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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4:21~25절 “등불이 있어야 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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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2-09-28 00:00    조회 5,914    댓글 0  
 
마가복음4:21~25절       “등불이 있어야 할 자리”      2012. 9. 30
구라파의 어느 지역을 방문한 여행자는 그 지역의 여행 가이드를 따라서 산골에 있는 한 작은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문을 열고 성전 안을 보니 너무나 초라하고 실내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별로 볼만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 교회를 소개한 지역의 여행 가이드는 여행자에게 오늘은 마침 밤에 집회가 있으니 밤에 다시 한 번 오자고 하였습니다. 여행자는 낮에 왔던 산골의 그 작은 교회를 다시금 방문하기 위해서 그 지역의 가이드를 만났을 때 그 가이드의 양 손엔 등불 두 개가 들려 있었습니다. 등불 하나를 여행자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산골의 그 작은 교회당에 가까이 왔을 때 숲 사이로 사람들이 모두 등불을 들고 교회로 가고 있는 아주 진귀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지역 여행 가이드와 함께 여행자는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예배당 안은 성도들 각자가 들고 온 등불로 인하여 너무나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던 겁니다. 더욱이 강대상 앞에 십자가가 있었는데 성도들의 등불로 인하여 그 십자가가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던지 여행자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그런데 빈자리 앞에는 ‘안나’ 라는 이름표가 있었습니다. 이때 가이드가 설명을 해 줍니다. 이 자리는 안나 할머니가 앉는 자리인데 지금 많이 아파서 출석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등불 하나가 비게 되어 그만큼 십자가의 모습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는데 당신으로 인하여 십자가가 환해 질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나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등불이 주는 가치가 얼마나 큰 가를 말해 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바로 그 등불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이 누구시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요1:9~12절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예수님은 참 빛이시라는 것이고 참 빛을 영접해 드린 우리는 빛을 드러내는 등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마5:16절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의 빛이신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이 우리의 착한 행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착한 행실이 무엇입니까? 착한행실을 원어에서 좋은 행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최상의 좋은 행실이란 뭐니 뭐니 해도 하나님의 일일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를 예수님이 말씀해 주시기를 요6:28~29절에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2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무엇이 숨겨져 있고 무엇이 감춰져 있다는 말씀입니까? 빛이신 예수님이 숨겨져 있고 감춰져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등이니까 숨겨져 있고 감춰져 있는 빛이신 예수님을 드러내고 나타내라 그래서 예수 믿게 하는 일 즉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런던에 부호인 은행가에게 예수를 진실히 믿는 아주 훌륭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학생은 무디가 설교하는 집회에 참석하려던 것을 그만두고 거리에서 마차를 끄는 마부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만일 아저씨가 무디 목사님의 집회에 가서 그분의 설교를 들어 주신다면 내가 당신에게 오늘의 마차 수입금을 대신 지불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저씨의 마차를 일일 마부가 되어서 일하겠습니다.” 그 날 밤 유난히 춥고 음산한 런던 날씨였지만 학생은 자신은 마부의 일을 하고 그 마부는 무디 목사의 집회에 참석하여 설교를 듣도록 하였습니다. 마부는 쾌히 승낙을 하였고 마부는 두 시간이나 앉아서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이 마부는 학생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역시 등이니까 빛이신 예수님을 드러내고 나타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21절에 등을 어디에 두고들 있습니까? 말 아래 또는 평상 아래 두고 있더라는 겁니다. 말이라는 단어를 뉴 인터네셔날 버전 NIV에서 bowl 그릇이라고 번역하였고 오늘 본문에선 됫박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닥에 있는 그릇 아래에 등불을 두고 있더라는 것이고 영어로 bed 침상을 뜻하는 평상에 두고 있더라는 겁니다. 이 경우는 분명한 것이 빛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등에 불이 붙어 있어서 빛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등불이 등불 놓는 자리인 등경 위에 제자리에 있지를 못하고 그릇 아래에 있고 침상 아래에 있기 때문에 밝기가 많이 어둡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오늘 날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똥벌레라고 불리는 반디는 수컷은 센 빛을 깜빡거리고 암컷은 풀이나 나뭇잎에 앉아 약한 빛을 깜빡입니다. 그래서 반디를 사람들은 반딧불이라고 부릅니다. 왜 개똥벌레라고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개똥벌레라고 불리는 반디는 발광 세포와 반사 세포로 된 발광 조직이 있는데 발광 세포에서 루시페린이나 루시페라아제라는 물질이 화학 반응을 일으켜서 빛을 만든다고 합니다. 만약 반디에 불이 없었다면 반디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반디의 가치는 반딧불에 있습니다.
반디는 어른벌레뿐만 아니라 알이나 애벌레나 번데기 때에도 빛을 낸답니다. 반디가 알일 때는 그 빛이 매우 약하고 어른벌레처럼 깜빡거리지는 않지만 날이 갈수록 그 빛은 세어진다고 합니다.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물속에 떨어져 기어 다니며 다슬기를 먹고 살지만 여전히 몸에 빛을 간직하고 살아간답니다. 애벌레는 여섯 번이나 허물을 벗어 던지고 추운 겨울이 끝나고 봄비가 내리면 땅을 파고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자는데 이렇게 자고 있을 때도 역시 빛을 낸답니다. 이미 몸의 생김새는 번데기로 변했지만 빛은 여전이 나오고 애벌레 때보다 더 밝게 빛을 냅니다. 땅속에 들어간 지 40일 쯤이 지나면 허물을 벗고 세상으로 나와서 이제까지 한 번도 날아 보지 못한 하늘을 날아다니며 반디는 어둠을 빛으로 깨우는 겁니다.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을 담은 등입니다. 반디의 애벌레 때처럼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순간 이미 빛이신 예수님을 반짝이는 사람들이 되었고 어른 반디로 자라면서 그 빛이 더 강하여 지는 것처럼 우리 또한 빛이신 예수님이 시간이가고 연륜이 싸이고 신앙경력이 붙으면 붙을수록 더 빛이신 예수님을 드러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미물인 곤충도 자신에게 있는 빛을 드러내기 위해서 부지런히 하늘을 나는데 빛이 있으면서도 그릇 아래 침상 아래 있다면 되겠습니까? 23절입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은 빛이신 예수님을 전하는 등의 역할입니다. 감춰진 예수님을, 숨겨진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보여주는 그래서 믿게 하는 등불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24절에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에서 아주 쉽게 해석하기를 “이 말을 명심하여 들으라.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너희가 남에게 달아주면 주는 만큼 받을 뿐만 아니라 덤까지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빛을 가진 등으로서의 성도인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명심하여 그릇 아래나 침상 아래에 등불을 두지 말고 등경 위에 둔 등불로서 살아서 많은 사람들을 예수 믿게 한다면 더 많은 영혼을 구하는 일들에 쓰임을 받게 될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고 감춰진 등불처럼 나타내지 않는 등불처럼 산다면 나를 통해서 구원 받을 영혼들을 빼앗기고 말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등이 위대합니까? 빛이 위대합니까? 등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빛이 위대합니다. 빛을 위해서 등대의 사명을 잘 하면 등불 또한 높은 자리에서 존경을 받게 됩니다.
97년 9월 5일자 동아일보 전면 상단에 “세상을 살다간 천상의 빛”이라고 놀라운 제목이 눈을 끈 적이 있었습니다. 테레사 수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위대합니까? 아니면 등불인 테레사 수녀가 위대합니까? 당연히 빛이신 예수님이 위대합니다. 그러나 등으로서 테레사 수녀가 빛이신 주 예수를 드러내는 일들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다보니까 빛이 받는 영광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21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함께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거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등잔대 위에 두지 않겠느냐?”
추석 명절동안 아니 일평생을 등잔대 위에서 예수님이신 등불을 비추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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