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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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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6:10절 “상황에 따라 감사하나요. 하나님이시기에 감사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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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6-25 17:07    조회 1,596    댓글 0  
 
단6:10절 “상황에 따라 감사하나요. 하나님이시기에 감사하나요.” 2022.6.26.
사람들은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지요 그래서 스승이 화가 나면 왜 소리를 지르는지 아느냐고 물었다는 겁니다. 제자들이 화가 나면 소리 지르게 되는 이유를 다양하게 이야기 했지만 스승의 마음을 만족케 할 만한 대답을 하는 제자들이 없었다는 거지요 스승이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사람들이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는 이유가 뭐냐 하면 서로의 마음이 멀어졌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래서 그 거리만큼 소리를 지른다는 거고 소리를 질러야 멀어진 상대방에게 자기 소리가 들려진다고 여기기 때문이지 하더랍니다. 그런 것 같지요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소리는 더 커지잖아요. 왜 그 만큼 상대가 멀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상대도 따라서 더 크게 소리치지요 둘의 가슴이 멀어져 버려서 작은 소리로는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렇잖아요.

다음 주는 맥추감사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보리맥과 가을 추가 합하여 맥추라는 거잖아요. 보리추수를 6월까지 마치고 7월인 가을에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제사를 말하지요 벌써 일 년 중 반년을 한 주 앞두고 오늘 감사에 핵심을 두고 본문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럼 오늘 본문의 때가 언제인가하면 주전539년에 바벨론제국이 망하고 페르시아제국이 등장하기 전 2년 동안의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메대와 바사의 연립정부형태로 존재했었는데 이 시기를 역사적으로 메대와 바사의 과도제국시대라는 거지요
이 과도제국시대에서 바사의 고레스2세는 계속정복전쟁을 하고 있었고 바벨론을 수도로 정하고 예우차원에서 메대의 다리오왕으로 다스리게 하였었는데 오늘 본문의 내용이 바로 이때였었다는 겁니다. 2년의 시간의 지난 후 고레스2세는 정복전쟁을 마치고 돌아와 다리오왕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사위가 됨으로 자연 메대를 흡수하여 고레스2세가 바사사람이므로 통일제국이지요 페르시아제국이 세워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바벨론에서 이어 메대 다리오왕 때도 총리로 중용이 된 다니엘을 시기하는 무리들이 다리오왕을 부추켜 한 달 동안 황제숭배 외에 다른 신을 숭배하는 사람에 대해 사자굴에 던져 넣도록 하는 법을 칙령으로 공포했다는 거지요 여기 ‘알고도’ 히브리어 ‘케디 예다으’는 ‘확실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라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다니엘은 그 칙령의 내용보다는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것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거지요 그런데 다니엘은 메대의 총리였었다고 말하잖아요. 그렇다면 국가의 최 고위직 공무원인데 국가공무원은 나라가 정한 아무리 악법이라도 지켜야하는 입장이었다는 거지요 이 국가의 권위에 대해 사도바울이 롬13:1~2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나라권세에 복종하라, 뭡니까? 이 또한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이 총리라는 직책을 가진 고위직 공무원으로 그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해서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물론 지금의 악법에도 거스르지 말았어야 맞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다니엘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그 나라의 권위에 불복종하는 모습에서 마치 하나님의 권위마저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지요 그러나 다니엘은 국가의 권위가 법률로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는 지키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았다는 거잖아요
이런 일은 초대교회 때도 있었는데 유대당국의 종교지도자들의 권위로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하지 마라는 엄한 명령이 내려졌을 때 행5:29절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베드로와 사도들 역시 복음전파에 대한 함구령에 대하여 그 권위에 복종하기 보다는 복음전파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본 것이라는 겁니다. 어제가 육이오전쟁이 발발한지 72주년이었지요. 1950년9월15일 맥아더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성공하였고 이로 인해 전세는 완전히 북한군에서 연합군으로 뒤바뀌게 됩니다. 그때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확률이 놀라지 마십시오 0.2프로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인천 앞바다의 지형적 불리함으로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부정적 보고였다는 거지요 거기다가 역사적으로 바다에서 육지로 들어가는 오백 번의 작전 중에 노르망디상륙작전을 제외하고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보고까지 덧 붙여 보고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맥아더장군은 부정적인 보고에 연연하지 않고 이 모든 권위 있는 보고보다 더 큰 하나님의 권위를 바라보며 밤새도록 기도했다는 거고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자유하는 나라에서 최고의 번영을 이루는 것을 눈으로 보는 주역으로 서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나라의 권위보다 하나님의 권위에 더 순종하는 다니엘은 나랏일을 다 보고 퇴근 후 윗방으로 올라갔다는 겁니다. 여기 ‘윗방에’ 히브리어 ‘뻬일리테흐’는 ‘2층 방’이라는 거지요 분명한 것은 다락방이 아니라 주거공간으로서 이층 방이라는 의미거든요 이층 방은 당시 사회적 지위가 총리였던 다니엘의 집의 규모를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주거 공간으로서의 이 이층 방을 주거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기도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이 기도의 공간에서 드리는 다니엘의 기도의 특징은 뭐였을까요? 첫째로 예루살렘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다는 겁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그 근거가 뭘까요? 다윗의 아들 솔로몬으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솔로몬이 솔로몬성전을 짓고 기도할 때 왕상8:48~49절에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 곧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 그랬었구나 지금은 비록 그 솔로몬성전이 모두 무너지고 폐허가 되었고 자신들은 바벨론으로 끌려와 바벨론에서 메대라는 나라를 바꿔가면서 이방나라들을 섬기고 있는 상태에 있었지만 다니엘은 이 솔로몬의 기도를 붙들고 예루살렘성전을 향해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이스라엘백성의 포로에서의 귀환을 위해 기도하면 하늘에서 그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돌아보실 것이기 때문에 비록 사자굴속에서 던져진다하여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플러스사고방식과 마이너스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간 데요 플러스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는 자는 긍정적이며 감사하며 즐겁게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들은 단순히 플러스사고방식만 의존하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그 근거를 두고 살아가지요 세상환경이나 사람의 말을 가까이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되는 줄을 믿습니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브라함링컨은 자신의 승리의 비결을 ‘부정적이 사람을 멀리하고 긍정적인 사람을 가까이 둔’ 때문이라 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긍정인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가까이하고 기도하시는 이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둘째가 다니엘은 기도할 때 창문을 열어놓았다는 겁니다. 황제 외에 다른 것에 기도하면 사자굴에서 죽는다는 법으로 칙령이 된 상태이고 다니엘을 미워하는 이들이 현장을 잡아내기 위해 지금쯤 어디선가 보고 있음이 분명하거든요 그런 이유로 다니엘은 충분히 외부에서 보지 못하게 창문을 열지 않고 기도할 수 있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창문 저 너머 예루살렘성전 회복을 바라보아야 하였기에 늘 지금까지 해 오던 것처럼 다니엘은 창문을 열고 기도했다는 거 아닙니까? 믿는 자의 담대함이요 용기지요 이 담대함과 용기는 원수의 위협과 사자굴의 죽음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안 좋은 환경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내 마음의 문을 열면 하나님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의 창을 열면 하늘의 창이 열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셋째가 다니엘의 기도는 하루 세 번 기도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기도하였다는 거거든요 보통 경건한 유대인들은 대상23:30절에 “아침과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송하며” 두 번이지요 그러나 다니엘은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 세 번 기도했다니까 특별히 점심은 왕실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기도해야 했으니까 다니엘은 예레미야선지자가 하나님의 약속 70년이 지나게 되면 이스라엘의 회복과 포로에서의 귀환이 이루어지리라는 그 약속을 참으로 열망하고 있었다는 거고 그 성취의 약속을 믿었기에 세 번씩 기도하는 열심과 수고가 따랐다는 거거든요 왜 기도에 힘써야 됩니까?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의 눈은 육신과 환경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기도에 힘쓰면 문제와 환경이 크게 보이던 것이 하나님이 훨씬 더 크심을 보게 되지요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잖아요. 기도가 바로 하나님에게 우는 거거든요 기도에 힘쓰잖아요. 그러면 기도로 하나님은 들으시고 당신의 큰 힘을 허락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은 넷째가 다니엘의 기도는 무릎을 꿇는 기도였다는 거지요 이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요 절박한 마음과 간절함이 담긴 의미의 기도자세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다니엘은 자기백성의 포로에서의 귀환과 조국 이스라엘과 수도 예루살렘 그리고 성전의 회복을 진지하게 사모하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기도는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거든요 기도는 비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거래요 기도는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겠다고 선언하는 거랍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다섯째가 전에 하던 대로 기도했다는 거지요 황제숭배 외에 기도하는 행위에 대해 사자굴속에 던져지는 죽음이라는 법이 반포가 되기 전부터 해 오던 기도를 사자굴에 던져진다 해서 중단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이래서 하던 기도 중단하고 저래서 기도를 못하고 아니지요 하던 대로 기도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여섯째 다니엘의 기도는 하나님께 감사함을 빠뜨리지 않았다는 거지요 여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히브리어 문장은 ‘우모데 코담 엘라헤으’는 ‘그리고 그의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있었다는’ 의미거든요 여기서 다니엘은 ‘자신의 하나님’ 즉 ‘다니엘의 하나님’이라고 칭하고 있음을 본다는 거 아닙니까? 이 칭호에서 발견되는 사실은 다니엘은 하나님과 매우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의 기도에 간악한 자들을 물리치셨나요? 저들의 계획을 무산시켜버리셨나요? 지금 점점 더 어려운 상태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까? 아니지요 물리치시지도 무산시키지도 개입하시지도 않으셨다는 거 아닙니까? 오히려 침묵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는 겁니다. 뭔가가 해결되어서 감사가 아니었던 거지요 전혀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감사했다는 거거든요 오히려 점점 더 안 좋아질 상황이 기다리고 있는 중에서 감사한 거지요 ‘기도는 없는 것을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감사하는 거래요’ 여기 ‘감사하였더라’ 히브리어 ‘우모데’는 손을 들고 감사드리거나 찬양으로 감사를 표하는 모습으로 지속적으로 감사했다는 겁니다. 한 번 감사하고 그친 감사가 아닌 상황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나의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라는 거잖아요 살아계신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성취하시는 하나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때문에 믿고 감사했다는 거지요 하나님은 다니엘의 이 감사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고 감사가 가진 능력이 얼마나 큰지 사자굴속에 던져진 다니엘을 머리털하나 상하지 않도록 지켜내셨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 역시 상황 따라 감사하는 이들이 아니라 다니엘처럼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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