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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1:1~3절 “믿음이 없는 사람, 작은 사람, 큰 사람, 나는?” 202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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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6-17 10:45    조회 104    댓글 0  
 
히11:1~3절  “믿음이 없는 사람, 작은 사람, 큰 사람, 나는?”  2022.6.19.
러브지저스라는 작자 미상의 시가 있어 소개합니다. 난, 가끔 주님이 싫습니다. 가끔 주님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가끔 주님이 내 기도를 듣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가끔 아주 가끔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러브 지저스 가끔 네가 나를 잊어버려도 가끔 네가 기도를 하지 않아도 가끔 아주 가끔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고백하여도 난 항상 너를 사랑 한단다 믿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시잖아요. 우리에게 예수님은 뭘 약속하고 계신가요? 마28:20절에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1절을 보실까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다짜고짜 ‘믿음은 ~이요’ 헬라어 ‘피스티스 에스틴’이라고 히브리기자는 너무도 간단하게 믿음을 두 가지 대답의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있음을 보지요 그 당시 ‘믿음’ ‘피스티스’를 헬라사람들은 신이나 사람에 대해 가진 신뢰를 나타낼 때 ‘피스티스’라고 했고 또 그 사람에 대한 진실성을 말할 때도 ‘피스티스’라고 했고 신용이나 보증 또는 증명을 확인하는 의미로 피스티스, 믿음이란 단어를 사용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히브리기자는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지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야’ 여기 ‘실상’ 헬라어 ‘휘포스타시스’는 ‘아래에 있는 것’이란 의미니까 ‘기초’ 또는 ‘토대’를 말한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건물을 지을 때 먼저 하는 일이 기초, 토대를 놓는 일이고 지금 토대밖에 없지만 도면을 가지고 있는 건축가의 머릿속에는 이미 세워질 건물을 실체로 현실적으로 마음에 가지게 될 거고 토대를 바라보면서 이는 앞으로 세워질 건물의 보증이 된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정리해 봅니다. 믿음이란 소망하는 것을 현실화하고 실체화 할 수 있는 확실한 보증이 되는 토대라는 거지요
그리고 믿음에 대한 또 하나의 대답이 뭡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잖아요 여기 ‘보이지 않는’ 헬라어 ‘블레포메논’은 ‘눈이 가리워져 볼 수 없는’이란 의미거든요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믿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만 믿잖아요. 지구가 스스로 돈다는 지구의 자전을 과학적으로 입증되기 전엔 보지 못하니까 믿지 못했는데 과학적으로 입증된 지금은 믿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경험적인 것은 믿는 다는 거지요. 한번 가본 곳과 한번 체험한 것은 당연히 믿잖아요.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어떻다는 겁니까? 영계는 보이지 않고 천국도 볼 수 없고 미래 역시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약속도 볼 수 없지만 이것들을 본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믿음’ ‘피스티스’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겁니다. 여기 ‘증거’ 헬라어 ‘엘렝코스’는 ‘밝히 드러내다’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증인이라는 말은 밝히 드러내는 사람을 말하고 물증이란 사건의 전모를 밝히 드러낼 수 있는 물건이란 거잖아요 그러니까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들을 밝히 바라보는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히브리기자도 히10: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구약의 하박국선지자도 뭘 깨닫습니까? 합2:4절에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거지요 신약의 바울사도 역시 갈3:11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그렇다면 의인은 누굴 말하는 걸까요? 롬8:30절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믿음으로 사는 우리가 누구라는 겁니까? 죄인이 의인된 사람들이요 장차 하나님 앞에 설 영화로움을 받을 이들이라는 거지요 고후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예전엔 경험과 과학 또는 보이는 것만 믿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는 것을 현실화하고 실체화 할 수 확실한 보증이 되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된 거고 하나님의 약속들을 밝히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었음을 기억하는 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절을 보시지요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여기 ‘선진’ 헬라어 ‘프레스뷔테로이’는 모두 이스라엘의 조상들이었고 하나님이 그 믿음을 인정하시고 증거하여 주신 사람들이라는 거거든요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증거하여 주셨던 하나님이 사람으로 독생자로 이 세상에 오셔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하셨고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풍랑을 바라보며 무서워 바다에 빠지게 되었을 때 예수님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셨고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는 이스라엘 중에 이보다 믿음이 큰 자를 보지 못했다 하셨다는 거지요 뭡니까? 예수님의 관심은 그가 믿음이 있는 자인가 믿음이 없는 자인가 믿음이 큰 자인 가였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의 관심은 뭔가요? 뭘 먹을까 마실까 뭘 입을까도 환경도 아니지요 믿음으로 사는 가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관심은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있었다는 거지요 행14:9절에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의 관심 역시 그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과 그 믿음은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 역시 믿음이어야함을 말씀한다는 거지요 히10: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리고 뭘 고후13:5절에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뭡니까?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지 항상 살피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요11:25~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에 대해 마르다가 27절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죽어도 살게 하시는 그리스도이신 예수,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를 믿습니다. 과연 칭찬할만한 마르다의 믿음의 고백을 봅니다. 그런데 3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방금 전에 죽어도 사는 것을 믿는다 했었는데 무덤의 돌문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는데 돌문을 연다고 되겠습니까? 이에 4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그렇습니다. 말뿐인 믿음에 머물러 있을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지만 상황과 환경에 관계없이 믿고자 할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절을 보자구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뭘로 알 수 있답니까? 믿음으로 안다는 거지요 하나님이 말씀으로 이 세상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는 거잖아요. 오직 믿음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는 거거든요 왜 그렇습니까? 창조의 역사는 어느 누구의 눈으로도 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것과 역사가 기록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받지 않으면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거지요
여기 ‘모든 세계’를 말할 때 두 가지 단어가 있거든요 하나는 헬라어 ‘투스 아이오나스’이고 다른 하나는 ‘파스 코스모스’인데 이 둘의 차이점이 뭐냐 하면 ‘파스 코스모스’는 공간적인 의미의 모든 세계를 말하지만 3절에서 말하는 ‘모든 세계’ ‘투스 아이오나스’는 공간적 의미만이 아니라 시간적 의미까지 포함한 모든 세계라는 겁니다. 창1: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어떻게요? 3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이르시는’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거잖아요 요1: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고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어느 곳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모든 세계가 지어짐이 우리가 예수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될 때 믿게 되더라는 거 아닙니까? 세계가 창조되었음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심의 증거요 세계가 창조됨을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지 않음의 증거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없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가설에 의존하지만 하나님이 있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계시의 말씀에 의존하는 것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헬라사상은 뭘 말하는지 아시나요? 세상은 신이 주어진 물질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런 헬라사상의 창조론이 아니지요 주어진 물질이 아닌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드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뭡니까? 하나님이 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계시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 이 세계가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요 그래서 뭡니까?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까?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씀한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아일랜드출신으로 25세에 캐나다로 이민해서 40년간 박애의 삶을 살면서 성자라는 칭호를 받았던 ‘스크라이븐’은 이민하기 전 약혼녀의 익사사건으로 심적인 큰 상처를 받았다는 거고 멀리 캐나다에서 조국 아일랜드에 계신 어머니의 중병을 놓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치료의 능력을 경험한 그는 찬송가369장 죄짐 맡은 우리구주를 작시하게 되었지요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 찬송시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힘을 얻는다는 거지요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압바 호 파테르’ 압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요 그런데 믿음으로 사는 자가 가지는 능력이 뭐랍니까? 요1서5:4절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세상을 이길 수밖에 없는 큰 무기가 뭐라고요? 믿음이라는 겁니다. 이 믿음을 롬10: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런데 이 믿음이 엡2: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세상을 이기는 믿음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오는 이 믿음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심을 믿습니다. 찬송가549장의 작시자 슈몰크 목사님은 심방 갔다 와보니 두 아들이 교회당과 더불어 재가 되어 있더라는 거 아닙니까? 크나큰 아픔이요 견딜 수 없는 고통 중에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날 주관하셔서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이 찬송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위로와 힘을 얻습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관심이 누구에게 있다고요 이 땅에서 믿음이 없는 자 믿음이 적은자 큰 믿음을 가진 자를 찾으시며 그에게 믿음대로 되라는 엄청난 권세의 말씀을 주시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 설교제목 믿음이 없는 사람, 작은 사람, 큰 사람, 나는? 이 물음을 우리 자신에게 물으며 믿음이 없는 자도 믿음이 적은 자도 아닌 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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