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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11~26절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와 춤추게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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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5-06 17:36    조회 1,724    댓글 0  
 
삼상2:11~26절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와 춤추게 하는 자” 2022.5.8.
미국은 매년 6월 셋째 주일을 어버이주일로 지킨답니다. 모범적인 아버지 여덟 명을 뽑는데 그 중에 뉴욕 주지사를 지낸 마리오쿠오모씨가 선발자 가운데 있었다는 거지요 기자가 묻기를 어떻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있었느냐는 질문에 마리오쿠오모씨가 웃으며 대답하기를 ‘아내와 아이들 덕분이지요. 내가 잘 될 때 아내와 자녀들이 없었다면 아마 힘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내가 안 될 때는 모두 내 잘못으로 알고 철저하게 반성했답니다’ 모든 공은 아내와 자식에게 그리고 불행은 모두 자신에게 돌렸던 마리오쿠오모씨에게서 우리 모두 한 수를 배웠으면 합니다. 父親(부친), 母親(모친) 할 때 親(친)은 가까울 親(친)인데 나뭇짐을 해서 장에 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어머니가 언덕 나무 위에 서서 바라보는데서 생긴 뜻글자요 나무 판돈에서 어머니 좋아하는 고등어를 사들고 돌아오다 나무 위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며 기다리던 어머니를 아들이 지게에 태워 오는 뜻글자가 孝(효)라는 겁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해서 본문의 말씀으로 몇 가지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1절을 볼까요.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기도를 마친 엘가나와 한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냥 돌아간 게 아니지요 어린 아들 사무엘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하였다는 거지요 이렇듯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섬기면서 성장한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가장 어려웠을 때에 이스라엘자손에게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잠22: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지금 엘가나와 한나는 여호와를 섬기는 일이야말로 어린 사무엘에게 꼭 필요한 마땅한 일로 여겼다는 거잖아요 어린데 뭐 벌써, 아닙니다. 잠20:11절에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아 그렇구나 아이라도 청결함과 정직함의 여부를 충분히 동작과 품행으로 보일만큼 지각을 가지고 있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영아유치부가 필요하고 유년주일학교가 소중하다는 거 아닙니까? 더군다나 모든 지식의 根本(근본) 기초요 뿌리가 되는 지식이 잠1: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지혜로운 자가 누굽니까? 인간이 습득하는 지식 가운데 가장 먼저 기초를 이루고 뿌리를 두는 출발이 ‘여호와 경외’라는 거지요 반면에 미련한 자는 이를 멸시한다는 겁니다.
욜1:3절에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오늘 본문에 엘가나와 한나가 그랬다는 거잖아요 엘가나와 한나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기도 응답의 결과로 주셨다 해서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졌었지요. 그리고 젖떼기를 기다렸다가 아이 사무엘을 데리고 성전에 올라가 서원제를 드리고 꽤나 길게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 후 젖을 막 뗀 어린 사무엘을 엘리제사장에게 맡기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고는 고향 라마로 돌아갔다는 거지요 한창 엄마의 손을 타야만 하는 어린 것이 부모와 떨어지는 것도 그렇고 낯설기만 한 성전에서의 생활에도 불구하고 잘 견디어 낸 것은 대견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잖아요. 이렇게 성장한 사무엘은 제사장으로 사사로 훌륭히 그 직분을 감당하였음을 보면서 부모가 자녀에게 믿음으로 사는 것에 대해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는 거지요 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예수만 섬기는 가정으로 그리고 그 기초를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두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절을 보시지요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이건 뭡니까? 엘리의 아들들은 어떠하다고요? 행실이 나쁘데요 뜻밖이지요 더군다나 여호와를 알지 못하다는 겁니다. 교회 안에 살아도 하나님을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엘가나와 하나는 평신도임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초점을 두게 하고 있건만 뭡니까? 엘리제사장은 직무에 충실한 사람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충실하지 못했다는 거지요 3:1절에서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제사장의 영적상태는 곧 이스라엘자손들에게 같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러니 1:16절에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는 여인을 악하게 봤다는 거 아닙니까? 여기 ‘악한 여자’ 히브리어 ‘빠트 벨리야알’ ‘벨리야알의 딸’이란 의미거든요 오늘 본문에 ‘그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는 ‘악한 아들들’인데 히브리어 ‘뻬네 벨리야알’ 뭡니까? ‘벨리야알의 아들들’이란 의미거든요 그렇다면 직무는 충실했을지라도 영적으로 흑암한 중에 있었기 때문에 영적 분별이 되지 않고 있었다는 거지요 간절히 기도하는 한나는 빠트 벨리야알로 정작 뻬네 벨리야알인 자신의 아들들에 대해서는 보지 못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함께 하겠느냐 했잖아요 벨리야알은 유대인들이 부도덕하고 가치 없는 악한 것에 부여하는 말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야비한 자 또는 건달 또는 사악한 자를 말할 때 벨리야알이라고 불렀다는 겁니다. 13절에 엘리의 두 아들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14절에 하나님의 것을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15절에 하나님께 드리기도 전에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그리고 16절에 ‘억지로 빼앗으리라’ 이 모습을 하나님이 어떻게 보셨다구요 17절에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그 결과 30절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뭡니까?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경멸하니까 하나님이 경멸하신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엘리제사장의 아들들은 여기서 끝이 나잖아요. 34절 보세요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날 멸시하는 자에 대해 하나님이 경멸하시는 증거가 뭐예요? 사망이라는 겁니다. 엘리제사장은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한 사람이거든요 직무는 충실했으나 자식을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모든 지식의 기초요 뿌리인 하나님 경외를 어렸을 때 심어주지 못했다는 거거든요 반대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엘가나와 한나에게서 난 사무엘을 홉니와 비느하스를 대신한 새로운 제사장으로 세우시겠다는 거지요 35절을 보시지요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이는 일차적으로는 사무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요 이차적으로는 이런 충실한 제사장 사무엘 같은 이를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는 거니까 우리가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충실한 직분자로 섬기게 되면 예수그리스도의 세계가 펼쳐지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8절을 볼까요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여호와 앞에서’라고 하잖아요. 그리고 여기 ‘섬겼다.’ 히브리어 ‘솨라트’는 ‘예배업무’와 하나님과 관련된 ‘특별한 일’을 수행할 때 사용하는 단어거든요 엘리의 아들들은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다는 거고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세마포 에봇을 입고 섬겼다는 것은 뭡니까? 에봇은 겉옷 걸치는 어깨를 갖춘 앞치마로 가슴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의미하는 보석이 물린 흉패가 있고 흉패 안주머니에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사용하는 우림과 둠밈이 있어 공의로 판결하겠다는 뜻으로 판결흉패라 불렀다는 거고 이 에봇이 세마포로 된 에봇이라함은 거룩히 구별하였음을 뜻하는 거고 그런 몸과 마음으로 예배 업무와 하나님께 관련된 특별한 일을 섬겼다는 거거든요
19절을 보시지요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매년 드리는 제사에 그의 어머니가 남편 엘가나와 함께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사무엘에게 입혔다는 거지요 여기 ‘겉옷’ 히브리어 ‘메일’은 제사장들이 에봇 안에 입는 옷으로 엘리의 제사장직이 이미 어린 사무엘에게 이어지는 것을 깨닫는 겁니다. 여기서 엘리제사장에게 맡기고 끝난 것이 아니라 매년 제사를 드릴 때마다 성장하는 아들의 몸에 맞춰서 그에 맞는 옷을 지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힘썼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본 제사장 엘리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20절에 “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매” 여기 ‘축복하여’ 히브리어 ‘바라크’인데 뭘 축복했습니까?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려 섬기게 하였으니 사무엘을 대신해서 다른 후사를 주시기 원한다는 축복의 기도였잖아요. 1:17절을 보세요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때도 그 기도대로 하나님이 되게 하셨잖아요. 이번에도 그 축복기도대로 되었을까요? 19절이지요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그리고 21절에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기도하는 여인 한나를 악하다고 본 반면에 자신의 자식들의 악함에 대해선 제대로 보지 못하던 그 엘리제사장이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그 엘리제사장을 통해서 일하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린 사무엘을 성전에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도 엘리제사장이 했잖아요. 그러나 엘리 자신의 가문과 아들들에 대해서는 축복 대신 저주가 임하는 아이러니한 일을 겪게 되잖습니까? 22절을 보시지요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23절에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모든 백성에게서’ 이는 너희만 망하는 게 아니야 라고 엘리는 24절에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그러면서 아주 의미 있는 이야기를 25절에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 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 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그런데 어떻게 했대요?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는 겁니다 신앙인인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된데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여호와께 범죄 하면 하나님의 심판밖에 이루어질 것이 없으니 부모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는 거지요 그러나 마지막 26절에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하나님 섬기기를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배우며 성장한 사무엘은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는 겁니다 한 젊은이는 큰 배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항해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답니다. 이제 성년이 되어 마침내 그 꿈을 실현할 기회를 얻게 되었을 때 어머니의 간곡한 눈물의 만류에 자신의 꿈을 접게 되지요 그리고 어머니의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귀한 성도로 성숙되어진 이 젊은이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기에 이르지요 그 젊은이가 조지워싱톤이라는 겁니다.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인가 부모로 춤추게 하는 자인가 부모가 원하는 것은 거창한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부모를 춤추게 하는 것은 충실한 교회생활인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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