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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5:22~27절 “조그만 더 가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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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1-20 16:51    조회 1,910    댓글 0  
 
출15:22~27절  “조그만 더 가면 되는 것을”  2022.1.23.
조셉 마셜 3세는 미국 사우스 다코타중남부 로즈버드 인디언보호구역에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마셜3세는 이 어린시절 자신의 인디언 이름 ‘들소가 사랑해’라는 이름 때문에 백인 아이들로부터 상처가 되는 모욕적인 말을 많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때 그의 외할아버지가 마셜3세에게 <다른 아이들의 말이 너를 쓰러뜨릴 만큼 상처를 줄 수 있어 그렇지만 네가 그렇게 상처가 되도록 허용할 때만 그렇단다. 바람이 너를 그냥 스치고 지나가게 하는 법을 익힌다면 너는 그 아이들의 말들의 힘을 없애 버릴 수 있지 바람 같은 그 말들이 너를 화나게 하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 없이 그냥 네게서 지나게 하면 그것들은 네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거야> 오늘 본문을 통해 사람의 말과 환경으로부터 자유하는 법을 배우는 ‘조금만 더 가면 되는 것을’이란 제목으로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22절을 볼까요.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넌 이스라엘 자손들 약 이백만 명이 자신들을 잡아가려 쫓아온 애굽군대에는 더 이상 마른 땅을 제공하지 않음으로 원래 바다의 힘을 되찾은 홍해에 그들의 말들과 시체가 바다위로 떠올랐다는 거지요 이 모습을 본 이스라엘 여인들이 챔버린처럼 생긴 작은 북들을 들고 나와서 춤을 추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겁니다. 이곳을 사람들은 ‘모세의 샘’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 사흘 길을 걸었다는 거잖아요 거리로 약53km 정도 된다고 하네요. 사흘 길을 가는 동안 물을 얻지 못하고 있는 물이 모두 고갈 되어졌다는 것은 죽음 자체를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는 거거든요 한 사건을 예로 들어본다면 창21:14절에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그리고 그 다음 구절 창21:15절에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그리고 그 다음 16절에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하갈도 물이 떨어진 것으로 인해 아들의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거 아닙니까?
이스라엘자손 역시도 죽음을 생각했었다는 거고 그래서 나온 반응이 뭐였을까? 23~24절입니다.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이스라엘자손들이 원망했대요. 그 옛날 하갈처럼  죽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으니까 건너지 못할 물에서 구원 받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그 하나님을 북치며 찬양한 것이 불과 삼일 전인데 이번엔 먹는 물 때문에 찬양 대신  원망으로 바뀌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건너지 못할 물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때 이스라엘백성들은 살았었잖아요. 그렇다면 이번 먹는 물에서도 역시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살 거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이스라엘 자손과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우리가 누구라는 겁니까? 신8:3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누구라고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을 먹어야 사는 사람들이요 그 말씀을 먹지 못하면 죽는 사람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그곳의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음으로 마라라고’ 했다는 건데 여기서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이라는 믿음의 공동체에 속해 있어도 ‘마라’ ‘쓰다’ ‘실패’를 만날 수 있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마라를 만났을 때 이스라엘자손은 모세를 원망하였다는 거지요 여기 ‘원망하여’ 히브리어 ‘와일로누’는 ‘불평하다’ 또는 ‘수군거리다’라는 의미거든요 이런 모습에 대해 롬8:6~8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원망은 영의 생각보다 육신의 생각이 앞서서 생긴 거잖아요 영의 생각은 이런 상황에서 생명과 평안을 주지만 육의 생각은 사망 죽음을 생각한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이런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도 못한다는 건데 그 원망의 끝이 뭐랍니까? 고전10:10절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그래서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는 거잖아요. 여기 ‘마라에’ 히브리어 ‘마라타’는 ‘마라를 향하여’라는 의미거든요 누가 마라타 마라를 향하여 가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시지요. 왜요? 생명과 평안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이셨다는 겁니다. 여기 ‘대하여’ 히브리어 ‘알’인데 모세에 대하여 육의 생각에 머무는 까닭에 모세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를 하나님께서 ‘마라타’ ‘마라를 향하여’ 인도하셨을 때 육의 생각을 지나쳐 영의 생각으로 조금만 더 나가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5절을 볼까요.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 새” 성공만 생각하면서 사는 인생에게 가장 큰 문제는 뭡니까? 실패의 쓴맛의 경험을 못견뎌한다는 거거든요 인생에 성공도 있다면 때로는 실패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같은 상황에서 영의 생각에 붙잡힌 모세의 모습은 뭘까요? 여호와께 ‘부르짖다’ 히브리어 ‘차아카’는 ‘커다란 고통 중에 도움을 청하며 절규하는 모습’이니까 모세가 여호와께 절박함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었다는 거지요 뭡니까? 인간의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조금 더 나아간 모습이었다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 반드시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과 평안이라는 거지요.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네요 뭡니까?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 말씀에 의지하여 그가 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다는 겁니다. 여기 ‘한 나무를’ 히브리어 ‘에츠’는 어떤 나무인지를 설명해 주지 않고 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모세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였었던 것처럼 여기 ‘에츠’ ‘한 나무’ 역시 마라에서 필요해서 쓰시는 그냥 도구였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아닌 거지요 여기서 우리도 깨달아야 할 것은 나에 대해 대단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 나무 하나 ‘에츠’로 기적을 이루신 하나님이 대단 하신 거지 나무가 아니란 거거든요 그러므로 나무에 의미를 찾으려 말고 또 사람에게 그 의미를 두려고 하지 말라는 거지요
그리고 ‘마라타’ ‘마라를 향하여’ 하나님이 인도하신 이유가 나오잖아요.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려는’ 때문이라는 거지요 뭡니까? 우리가 마라를 만나지만 조금만 더 나아가면 26절에 ‘치료하는 여호와’ 회복하게 하시는 여호와를 경험하게 될 거라는 것이 하나님의 법처럼 또는 율례처럼 자리 잡게 하시려고 이를 시험하시려는 목적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생각에서 오는 모든 원망을 버리고 영의 생각 하나님이 이 같은 상황에서 나에게 조금만 더 나아가라고 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방법을 보이시겠구나 감사함으로 기도하면서 나아가야지 하는 것이 법처럼 율례처럼 자리 잡으라는 거 아닙니까?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이것이 나의 율례요 법이 되어 찬송하면서 나감으로 시험도 통과하고 전능자의 구원도 맛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닥칠 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하지만 오히려 우리의 영혼을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7절을 볼까요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실제로 마라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게 되니 물 샘이 열둘이나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나 있는 엘림에 이르게 되더라는 거 그래서 거기에 샘 곁에 장막을 쳤다는 겁니다. 만약 조금만 더 나아가 엘림에 바로 도착했다면 어땠을까요? 마라의 쓴물을 단물 되게 하시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법과 율럐를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도 그렇잖아요 방황하는 영혼을 만지시고 병든 육신을 만지시고 상처 난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는 주님을 경험한 후에 비로소 쉴만한 물가를 맛보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처음부터 ‘힘이 세다’ 또는 ‘곧고 굳센 나무들’ 이라는 의미의 ‘엘림’에 도착했다면 감사도 은혜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 체 당연히 받는 것으로 여겼을 겁니다. 코로나19로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된 것처럼 마라를 거치면서 우리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셔, 이것이 법처럼 율례처럼 자리 잡게 하심을 기억하며 조금만 더 가면 엘림을 만나더라는 거지요 곤충학자 찰스 코우만 여사는 나비가 작은 고치구멍을 내며 몸부림을 치고 막 나오려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서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나비는 그 작은 구멍으로 뚫고 나오지를 못하더라는 겁니다. 이러다가는 영영 나오질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긴 시간 애를 쓰고 있는 나비가 안쓰러워 가위를 가져와 고치구멍을 조금 뚫어 주었다는 거지요 비로소 나비는 쉽게 고치를 빠져 나오게 되었지만 나비는 아주 작고, 찌부러진 상태와 가냘픈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언젠가는 날개를 활짝 펴고 더 커서 자기 몸을 튼튼히 지탱할 만큼 되기를 기대하면서 지켜보기로 했지만 실망스럽게도 그 나비는 계속 말라비틀어진 몸통과 찌그러진 날개를 지닌 채 날개를 질질 끌며 바닥을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은 날지를 못했다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 찰스 코우만 여사는 자기 딴엔 친절과 호의를 베푼 거였지만 사실상 나비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주게 된 것을 알게 된 거지요 그러니까 나비가 고치의 작은 구멍을 애를 써서 빠져나와야 했던 것은 나비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법이었고 율례였고 과정이었다는 겁니다. 나비가 작은 구멍을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동안 그 몸통에 있던 액체가 나와 날개를 적시게 되고 그러면서 단련된 날개가 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었는데 기억하십시다 날아오르기 위해 인내하는 작은 애벌레처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들은 우리를 더 좋게 하시려고 우리로 올바른 신앙인으로 우리로 힘 있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마치 율례와 법처럼 또 다시 바라보면서 조금만 더 나아가자구요 그래서 영혼과 마음 육체까지도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맛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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