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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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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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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4:4~9 “주님이 가까우시니 당신의 관용을 보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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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1-10-21 21:08    조회 2,478    댓글 0  
 
빌4:4~9  “주님이 가까우시니 당신의 관용을 보이십시오”  2021.10.24.
인생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연속으로 가로막고 있지요 마치 양파가 끊임없이 벗겨도 양파가 등장하는 것과 같고 한국의 산야와도 같지요 어딜 가든지 사방이 산이잖아요 크고 작은 산들이 마치 병사처럼 줄지어 이어집니다. 인생의 문제만큼이나 많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다르지 않잖아요. 이런 인생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4~5절을 볼까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여기 ‘주 안에서’ 헬라어 ‘엔 퀴리오’인데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겁니다. 어째서 주안에서 기뻐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는데 하나는 ‘이제 곧 재림하실 예수님을 소망하게 되니까’ 그래서 기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고 또 다른 하나는 ‘엔 퀴리오’ ‘주 안에서’라는 말은 예수님에 대한 전적 신뢰에서 그 분이 가장 아름답게 하실 것을 알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는 겁니다.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엔 퀴리오’ 주 안에 있는 자들이 기뻐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 ‘항상’ 헬라어 ‘판토테’는 한 순간도 예외 없이 모든 시간이라는 의미니까 모든 시간에 기뻐하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들로 인해 겪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 ‘엔 퀴리오’ ‘주 안에서’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이들은 더 아름답게 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면서 ‘판토테’ ‘항상’기뻐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했는데 그 하나의 사건이 시기와 분쟁으로 바울을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할 목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자신들이 바울보다 낫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복음을 전파했다는 거거든요 이럴 때 빌1:18절에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그렇습니다. 여기 바울의 기쁨은 ‘항상’ ‘판토테’의 기쁨이었다는 거지요 또 다른 사건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는 중에 다른 풍속을 전한다는 이유로 매를 많이 맞고 옥에 갇혔었거든요 행16:25절이지요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분명 원망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기도하고 찬송하더라는 거 아닙니까? 여기 ‘찬송하매’ 헬라어 ‘휨눈’은 미완료형인데 그렇다면 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찬송했다는 겁니다. 뭡니까? ‘항상’ ‘판토테’ 기뻐하며 찬송할 수 있었다는 거지요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의 조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할 거라는 아주 슬픈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을 때 합3:18절에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왜 기뻐할 수 있었답니까? 구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거잖아요.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기반을 둔 때문에 기뻐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예수님 곧 재림하실 거고 아름답게 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바라며 하나님에게 기반을 둔 신앙은 ‘엔 퀴리오’ ‘주 안에서’ ‘판토테’ ‘항상’ 기뻐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신앙에 뭐가 나타난다는 겁니까? ‘관용’이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관용을 알게 하랍니다. 여기 ‘관용’ 헬라어 ‘에피에이케스’는 ‘무엇에 대하여 복종하다’는 의미로 무엇에 대해 자신의 우위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거고 넓은 마음으로 남을 품는다는 겁니다. 왜 성질대로 기분대로 하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품는 ‘관용’ ‘에피에이케스’를 모든 사람으로 알게 하라고 명령합니까?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거지요 여기 ‘가까우시니라’ 헬라어 ‘엥귀스’는 시간적 의미로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곧 예수님 오시는데 너그러운 넓은 마음으로 품게 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명령임을 기억하고 관용을 보이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7절을 보시지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기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에서 ‘염려하다’ 헬라어 ‘메림나테’는 ‘문제거리로 인식하고 근심하다’거든요 그런데 이 문제거리는 자신의 능력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로 염려하기보다는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나가라는 거지요 여기 ‘기도’ 헬라어 ‘프로슈케’는 일반적인 기도를 말하고 ‘간구’ 헬라어 ‘데에세이’는 특별히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라는 겁니다. 그런데 기도와 간구에서 꼭 있어야 할 요건이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거잖아요 여기 ‘감사함으로’ 헬라어 ‘메타 유카리스티아스’는 ‘감사함을 가지고’라는 의미거든요 그렇다면 뭡니까? 기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뭡니까?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에 그 초점이 맞춰있다는 거거든요 욥의 기도를 보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기도가 이런 거야하고 보여주잖아요. 욥1:21~22절에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주시는 이와 거두시는 이에게 그리고 찬송을 받으시는 하나님에게 모든 초점이 가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가운데 서도 원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초점을 하나님께 둔 기도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다는 건데 어떤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겁니까? 기도한 것에 대해 모두 응답해주신다고 말하지 않지요 뭐랍니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거지요 뭡니까? 응답보다 더 귀중한 응답이라는 건데 뭡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겁니다 마음과 생각은 사단의 공격 주 대상이잖아요 그리고 여기 ‘지각’ 헬라어 ‘눈’은 ‘깨닫고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이것 보다 뛰어난 것이 뭐랍니까? ‘하나님의 평강’이랍니다. ‘하나님의 평강’ 헬라어 ‘에이레네’는 ‘하나님 자신이 지니신 평강’이라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이 당신의 평강을 감사하고 신뢰하며 기도와 간구로 나아오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기꺼이 주신다는 거잖아요 그러므로 이 평강은 인간이 처한 극한 상황에서도 누리는 평강이고 이 ‘에이레네’ ‘하나님의 평강’은 거짓되고 허탄한 것으로부터 공격 받는 마음과 생각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지키시기 때문에 응답 보다 더 귀중한 응답이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평강인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8~9절을 보시지요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우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며 주 안에서 기뻐하고 관용으로 살며 기도하고 간구하되 감사로 하나님께 초점을 두면 응답 위에 응답인 하나님의 평강이 주장하게 될 거고 이제 ‘끝으로’ 하나님의 평강이 아닌 아예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지켜야 할 본분을 6가지를 행하라는 겁니다. ⓵참되며  헬라어 ‘알레데’는 진리에 관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지 따르라는 거거든요 ②경건하며 헬라어 ‘셈나’는 사람이 볼 때 존경할 만한 인격이라는 겁니다. ③옳으며 헬라어 ‘디카이아’는 하나님이 보실 때 의롭고 공정하다는 거지요 ④정결하며 헬라어 ‘하그나’는 섞이지 않은 흠이 없다는 거고 ⓹사랑받을 만하며 헬라어 ‘프로스필레’는 사랑을 야기 시키는 매력을 지녔다는 거거든요 ⓺칭찬받을 만하며 헬라어 ‘유페마’는 좋은 평판을 받는 형제들이 되라는 건데 이 여섯 가지 행할 본분에 뭐가 붙습니까? ‘무엇에든지’ 헬라어 ‘호사’인데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라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참되야 하고 경건해야 하고 옳아야 하며 정결하여야 하고 사랑 받을 만 해야 하고 칭찬 받아야 한다는 거지요 그 다음 뭐랍니까? ‘무슨 덕이 있든지 ‘덕’ 헬라어 ‘아레테’ ‘은혜로운 행동’이라는 의미고 무슨 기림이 있든지 여기 ‘기림’ 헬라어 ‘에파이노스’는 ‘도덕적으로 칭찬받는 것’인데 은혜로운 행동과 칭찬 받을 받을 만한 행동 등 모든 행동에 이 여섯 가지 본분에 대해’ 생각하라는 말씀함을 보게 됩니다. 여기 ‘생각하라’ 헬라어 ‘로기제스데’는 ‘계산하다’ 또는 ‘숙고하다’라는 의미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바울이 뭘 말합니까? 8절에 여섯 가지 성도로서 본분을 다하는 모습을 9절에서 내게서 배웠고 또 보지 않았느냐는 거지요 그러니 ‘행하라’ 헬라어 ‘프랏세테’는 ‘발휘하라’는 겁니다. 실천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뭡니까? 행동으로 옮기라는 거지요 그러면 어떻답니까?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거지요
7절에서는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의 평강이 지켜 주시리라 했는데 여기 9절에서는 여섯 가지 성도의 본분을 다할 때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거지요 여기서 깨닫는 것이 뭡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인 성도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시지만 감사로 기도와 간구하는 자를 하나님의 평강으로 지키신다는 거고 성도로서 여섯 가지 그 본분을 다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평강이 아니라 뭡니까?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누구에게든지 관용할 수 있는 이유는 주께서 시간적으로 매우 가까이 계심을 기억하면서 오늘 설교제목처럼 당신의 관용을 보이시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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