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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6:31~46절 “말과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의 극복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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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1-09-01 21:13    조회 114    댓글 0  
 
마26:31~46절  “말과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의 극복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2012.9.5.
말은 집의 창문과 같답니다. 창문이 너무 없으면 답답하고 창이 너무 많으면 집이 허술해 보이고 안정감이 없듯이 말도 똑같다는 거지요 어떤 이는 말이 너무 없어서 답답하고 어떤 이는 말이 너무 많아서 피곤합니다. 그저 묻는 말에 너무 짧게 단답형으로 대답하면 상대방에게 오해를 사는가하면 또 너무 많은 설명을 하노라 치면 설교하느냐고 짜증을 내게 되지요 그래서 영국 전 수상 처칠의 말인데 ‘하고 싶은 말 도로 삼켜서 체한 적은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호소는 많이 할수록 간절할수록 좋다는 걸 기억하면서 말씀에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31절을 볼까요.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여기 ‘그 때에’ 헬라어 ‘토테’는 시간을 가리키는 때라기보다는 새로운 사건이 시작됨을 알리고 있다는 거지요 그것이 뭡니까? 제자들에게 ‘오늘 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거’라는 겁니다. 스가랴선지자는 예수님 오시기 전 520년 때 활동하던 선지자인데 그때 예언된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말씀을 인용하신 예수님이 ‘오늘 밤’이라는 거잖아요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뭡니까? 삼위 중 2위 이신 예수님은 기록된 말씀을 근거해서 예언의 말씀을 하셨다는 거고 삼위이신 성령님도 요16:13절에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러므로 우리도 어찌해야 할 것인지 답이 나오잖아요. 뭡니까? 기록된 성경말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왜 그렇습니까? 마5: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처럼 또 기록된 말씀처럼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두 다 버렸습니까? 56절에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그래서 시119: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셨네요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 따라 한 걸음씩 걸으며 살자구요
그리고 여기 ‘버리리라’ 헬라어 ‘스칸달리스데세스데’의 의미는 ‘너희가 걸려 넘어질 것’이라는 의미거든요 무엇 때문에 걸려 넘어진다는 겁니까? 지금까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을 보이시므로 예수님은 신적존재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능히 로마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분으로 확신하고 삼 년의 세월을 함께 했는데 지금 겟세마네동산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기력하게 저항 한 번 하지도 못하고 체포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걸려 넘어지게 될 거라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 개역개정성경에서는 ‘나를’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원문은 ‘엔 에모이’ ‘나 때문에’ 또는 ‘나로 인하여’라는 거니까 ‘너희가 다 나로 인하여’ 걸려 넘어지게 될 것이라고 넘어지게 되는 이유가 예수님 자신에게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슥13:7절을 보지요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여기 내 목자, 뭡니까?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자라는 거고 그 목자는 내 짝된 자라는 건데 그렇다면 영광과 위엄이 동등하시다는 거니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말하잖아요. 그리고 칼이라면 세상 권력인데 그 칼로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치게 될 거고 양은 흩어질 거라는 겁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손이 작은 자들 비천하고 하찮은 죄로 인한 인간을 말하지요. 그들에게 구원과 은혜를 베푸심으로 보호하시겠다는 예언인데 우리가 예수 믿고 바로 그 보호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걷는 작은 자들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2절을 보시지요.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죽었으나 살아난다는 것과 흩어져버린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겠다는 예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심을 알면서도 괴로워하지 않으실 수 있었던 이유가 뭡니까? 자신의 생명은 죽음이 영원히 가둬놓을 수 없는 생명의 근원이셨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예수님은 내가 보일 표적은 바로 고기뱃속에서 삼일 만에 살아난 요나의 표적이라고 하셨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마28:6절에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살아나신 후 또 갈릴리로 먼저 가시리라는 말씀대로 마28:16~17절에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모두 이루어졌음을 보면서 예수님이 누구시라는 겁니까? 요1: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33절을 보시지요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것이 뭡니까? 내가 다른 사람보다 좀 낫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거지요 35절에 나와 있지요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베드로의 자기 과신이 뭡니까? ①예수를 떠나지 않겠다는 거지요 ⓶주와 함께 죽겠다는 거고 ⓷주를 부인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지만 잠28:26절에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또 렘17: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이것을 모른 채 자기 마음을 믿는 베드로에게 34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뭡니까? 자기 과신은 실패를 낳는다는 걸 깨닫고 우리 모두 하나님을 의지 하므로 하나님이 성공케 하시는 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 자신을 과신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공의 길이 뭔지를 제시하시잖아요.

36절을 보시지요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 하사” 감람산 근처에 있는 작은 동산으로 감람유를 짜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지요 ‘기름 짜는 틀’이라는 의미의 이름 겟세마네에서 눅22: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님의 기도 역시 기름을 짜내는 듯한 그래서 땀이 핏방울처럼 되었다는 거지요 이렇듯 간절하게 기도하시는 예수님과는 다르게 큰 소리는 있었지만 기도의 소리는 죽어 있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본다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여기 ‘기도’ 헬라어 ‘프로슉소마이’는 평상시 하시던 기도와는 다른 특별한 기도라는 거지요 어떤 기도였습니까? 39절에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내 소원이 아닌 하나님의 소원대로 되기를 원하는 기도였다는 거지요
기도하시기 전 예수님의 마음은 두 개의 부정사로 표현되고 있지요 하나는 ‘고민하고’ 헬라어 ‘뤼페이스다이’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상태’라는 의미거든요 그리고 ‘슬퍼하사’ 헬라어 ‘아데모네인’ ‘매우 슬퍼하며 근심한 상태’라는 거지요 우리가 여기서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뭡니까?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십자가 지는 것 자체도 쉽게 하실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인데 아니지요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겪어야 했던 고통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깨닫게 한다는 겁니다. 결코 쉽게 대속하신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리고 베드로는 자신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깨닫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야 하는 기회로 삼아야 했던 건데 베드로는 어땠습니까? 말은 그럴 듯한 반면에 기도의 자리에서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런 제자들을 보시면서 예수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38절에 ‘깨어 있으라’ 41절에 ‘깨어 기도하라’ 그리고 43절에 ‘그들이 자니’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잃어버리지요 그래서 얻은 것은 결국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말게 된 거잖아요 그래요 깨어 있어야 할 때 깨어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깨어 있어 기도하여야 하는 이유를 예수님에게서 보잖아요. 55절에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당당하고 담대하시잖아요. 반면에 기도 없었던 제자들 그리고 기도의 자리에 있었으나 기도하지 못했던 제자들은 56절에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그렇습니다. 말로는 내 의지와 뜻대로 되지 않아도 기도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37:5절에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빌4:6~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 모두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처럼 깨어 기도하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강하고 담대하게 맞설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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