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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3:6~14절 “개인의 판단에 움직이기보단 하나님께 묻자와 신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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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1-04-15 20:28    조회 3,692    댓글 0  
 
삼상23:6~14절  “개인의 판단에 움직이기보단 하나님께 묻자와 신앙으로”  2021.4.18.
기포드쇼는 개인의 변화이든 조직의 변화이든 모든 궁극적인 변화는 내면에서 시작된다고 말했지요 정확한 지적입니다. 내면의 변화는 자기 영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변화는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가능한 거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거지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보다는 개인적 판단에 의존하는 사울과 개인적 판단보다는 하나님에게 묻는 신앙으로 사는 다윗을 통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6절을 볼까요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다윗이 그일라에 있을 때인데 제사장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몸을 피했고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답니다. 에봇은 대제사장이 입는 겉옷에 걸치는 조끼나 앞치마 형식의 옷인데 가슴 쪽엔 12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이 박힌 판결 흉패가 있고 그 주머니에는 빛을 상징하는 우림과 완전을 의미하는 둠밈이 들어있는데 이 옷의 의미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거고 이 에봇이 다윗에게로 왔다는 것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시겠다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나타내주고 있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여기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손에 에봇을 가지고 왔다’에서 손이 주고 있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삼상21장에서 대제사장 아히멜렉의 수중에 있는 것은 전날 진설했다가 물린 떡으로 제사장들만 먹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다윗에게 내어줌으로 다윗과 다윗을 따르는 자들의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했으니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도움의 손이었다는 거고 삼상22장에 가서는 대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로 아히멜렉과 제사장 팔십오 명을 죽인 그 사울의 손은 무력으로 왕권을 유지하려는 불신앙의 손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에봇을 들고 있는 그 손이 주는 의미는 사울의 무력의 손으로부터 다윗을 구하시려는 여호와의 손이었음을 깨닫게 한다는 거지요
그일라 성을 블레셋에 빼앗겼을 때 다윗이 묻지요 하나님 제가 내려가서 쳐도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가서 구원하라하셨고 그래서 블레셋을 물리치고 그일라를 구원했고 다윗이 그래서 그일라에 머물러 있었다는 거지요 7절을 보시지요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것을 사울이 알고 뭐랍니까? 하나님이 그를 내손에 넘기셨도다 여기 ‘넘기셨도다’ 히브리어 ‘닉카르’는 ‘이방인으로 여겼다’거든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방인으로 취급하셨다는 거고 다윗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손길에서 벗어났다는 거지요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사울의 인간적인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었잖아요. 여기서 뭘 발견합니까? 사울은 하나님을 향해 묻는 신앙이기보다는 개인적 판단에 근거하면서도 마치 하나님의 뜻인 양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뭡니까? 신앙이 타락하면 곧잘 하나님의 뜻을 왜곡한다는 거 아닙니까? 반면에 다윗은 어떻습니까? 2절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4절에도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다윗은 개인의 판단에 움직이기보단 하나님께 묻자와 신앙이었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가장 강력한 무기가 기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 없는 개인의 확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14절을 보시지요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자기 판단 자기 확신으로 사는 것은 허무한 결과를 낳을 뿐이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다윗처럼 모든 것을 아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묻자와 신앙을 소유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울이 자기 확신에 차서 ‘갇혔도다’라고 말합니다. 뭐냐 하면 그일라 성만 포위하면 된다고 기뻐했다는 거지요 그러나 다윗이 성에 갇힌 것을 기뻐하기보다는 그일라 성을 블레셋으로부터 다시 찾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보면서 오히려 기뻐했어야 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사울은 다윗의 갇힌 것을 보기보다는 자기 확신과 개인적 판단에 갇혀버린 자신을 봤어야 했다는 거 아닙니까? 자! 그일라 성을 포위한다면 사울의 생각대로 다윗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는데 어떻게 되는지 볼까요?

8절을 보시지요.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 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여기서 사울의 자기 판단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주지요. 실은 군사를 모집하고 블레셋에 빼앗긴 그일라 성의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진즉이 출정했어야 했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자기 백성이 위급했던 그때는 잠잠하다가 다윗이 그 성에 있다니까 군사를 모집하고 그를 잡기 위해 출정을 하고 있는 거지요 여기서 우리가 깨닫지요 신앙이 바로서지 않으면 옳고 그름의 영적인 분별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싸울 대상은 마귀지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 다윗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볼까요? 9~10절에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사울의 음모를 알고 다윗은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그가 가지고 온 에봇을 가져오랍니다. 에봇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물이었거든요 그리고 우림, 빛으로 인도하실 거고 둠밈, 완전하게 인도하실 거라는 확신을 갖고 실제로 기도로 하나님께 묻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11절을 볼까요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 두 가지를 묻고 있지요 하나는 그일라성을 포위했을 때 그일라 사람들이 자기들이 살기 위해서 은인인 다윗을 사울에게 내 줄 것이냐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사울이 과연 내려 올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 주의 종인 저에게 일러 주세요 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다윗이 주의 종이라면 종의 주인은 누구시라는 겁니까?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사울은 어리석게도 다윗을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윗의 주인인 여호와 하나님을 상대로 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이자 종인 것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주의 종이라는 이 확신에 거한다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관여하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이 날 내어 줄 것이냐는 기도에 대한 답을 하나님께 듣지 못하자 12절에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응답이 없자 다시 물었다는 거고 그일라 사람들이 널 넘길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더라는 겁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깨닫지요 사람이 알려주는 정보로 움직이는 사울과 하나님의 정보에 움직이는 다윗을 본다는 거지요 우린 어떤 사람들입니까? 사람들의 정보에 더 기대하고 기웃거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정보를 얻기 위해 골방에 들어가는 타입 인가요? 사람들의 정보를 의지하는 자는 실패를 맛보고 헛짚을 때가 많지만 골방에서 하나님의 정보를 기다리는 이들은 성공을 맛보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면 그 다음 어떻게 되었을까요?

13절을 볼까요.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하나님께로 정보를 받은 다윗은 머뭇거리지 않지요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 옮겨, 다닐 수 있는 곳 어디든 옮겨 갔다는 겁니다. 왜 계속해서 옮겨 다녀야 했습니까? 사울에게 자신의 위치가 파악되는 것에 대한 대비였다는 거지요 그리고 급하게 옮겨야 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일라 지도자들이 다윗이 구해준 은혜를 저버리고 사울에게 기별하여 다윗이 우리 성에 있다고 고발을 했다는 건데 그럼에도 다윗은 그일라 주민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그 성을 떠났다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백성을 사랑하는 진정한 왕의 마음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왜요? 목적이 다윗을 죽이는 일인데 그일라에 다윗이 없다니까 더 이상 그일라를 향해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겁니다. 사울이 포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배후에 하나님이 포기하게 하심 때문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하나님께서는 귀한 정보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묻자와 신앙을 가진 다윗을 계속적으로 돕고 계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4절을 보세요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여기서 다윗이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는 곳 가운데 하나가 광야의 요새랍니다. ‘요새’ 히브리어 ‘메차드’는 ‘몸을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거든요 그 다음은 십 광야 ‘산골’ 히브리어 ‘하르’는 ‘작은 언덕’이니까 야산이라는 거지요 이렇듯 다윗이 이곳저곳 머물러있었을 때 매일 찾아다니는 사울이 잡을 수가 없었답니다. 여기서 사울의 일생이 뭡니까? 다윗을 죽이기 위해 찾아다니는 삶이었다는 거지요 얼마나 어리석은 삶인가요? 일생을 사람만 보고 그 사람 뒤만 쫓아다니는 삶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찬송처럼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 살며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삶이 되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를 14절 끝에서 뭐라고 확인해 줍니까?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거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왜요?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까 다윗이 안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이 사울을 막아주시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 자기 확신이 아닌 하나님께 묻는 엎드리는 자가 되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있으시잖아요 고전10:13절이지요 우리 함께 읽고 이 확신 가지고 돌아가자고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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