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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16:1~8절 “누가 죽은 자이고 누가 산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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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1-04-03 10:14    조회 3,843    댓글 0  
 
마가복음16:1~8절      “누가 죽은 자이고 누가 산자입니까?”        2021.4.4.
스페인의 파이레니이스산맥에 큰 불이 났고 이 화재로 주민들은 좋은 포도원이 다 타버린 것을 바라보며 한없는 절망에 빠져 한숨을 쉬었답니다. 그런데 이 화재로 바위돌 사이에 빛이 나고 있어서 확인해보았더니 바위에 함유되어 있었던 은이 뜨거운 열에 녹아서 내린 것이었지요. 주민들은 값비싼 은이 자기들 농장에 그렇게 많이 있다는 걸 몰랐었던 거지요 포도원이 다 타버려서 낙심 가운데 있던 주민들에게 뜻밖에 큰 부요가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처럼 예수 십자가 사건에 절망하고 있었던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도리어 큰 부요를 맞은 것과 같다는 거지요 그러면 오늘 부활주일 이 아침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1~2절을 볼까요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 등장하는 인물이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였고 이 세 여인은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사두었던 향품을 가지고 왔다는 겁니다. 요19:39~40절에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이 사실을 알았을 건데 또 향품을 준비한 것은 뭡니까? 그 만큼 예수님을 사랑함이 컸었다는 거지요
그리고 여기 ‘안식 후 첫날’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는 겁니까?
지금까지 유대인들이 지키던 안식일은 끝이 나고 따라서 주님의 부활로 어둠의 세력과 사망의 세력 그리고 절망의 세력을 이겨내신 안식 후 첫날은 주일로 바뀐 걸 의미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해 돋은 때’랍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새벽미명 누가복음에서는 그냥 새벽 요한복음에서는 아직 어두울 때에 라고 했는데 왜 마가복음에선 ‘해가 돋은 때’라고 했을까요? 상징적의미로 그 동안 사탄의 세력으로 인해 영적 어둠에 있었지만 이제 사단이 지배하던 어둠의 시대는 끝이 나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새로운 해가 떠오르고 있음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더 이상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고 빛 가운데 거하는 자녀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절을 보시지요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세 여인이 걱정하고 있었던 것은 무덤의 돌문을 여는 것인데 경사진 곳으로 끌어올려야만 열 수 있었기 세 여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었다는 거거든요 더군다나 병사들이 돌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것은 미처 생각지 못하고 누가 돌문을 굴려주는가 서로 말하면서 무덤에 도착했다는 것인데 4절 보세요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여기 ‘들어보다’ 헬라어 ‘아나블렙사사이’는 두 가지 의미로 하나는 ‘위를 쳐다보다’ 이고 또 하나는 ‘보이지 않던 걸 보게 되었다’는 거거든요 그렇습니다. 이 세 여인은 돌문을 어떻게 열지하는 근심으로 땅에만 집중하고 있다가 눈을 들어 돌문을 보았을 때는 이미 큰 돌이 굴려져 있었다는 거거든요 우리는 여기서 깨닫는 것이 있지요 우리의 시선이 땅만 바라보며 생겼던 근심과 걱정을 떠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이미 해결 된 문제를 보게 될 거고 기뻐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지요. 시42: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또 하나의 약속을 더 확인해 볼까요? 시43: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우리도 그러자고요 오늘 부활주일 땅을 바라보며 근심하던 모든 문제를 내려놓고 사망권세와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신 부활의 주님을 보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주의 도우심으로 찬송할 일이 생기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절을 볼까요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여인들이 무덤에 들어가서 본 것은 뭡니까?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었다는 겁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형상이 번개 같고 눈 같이 흰 옷을 입은 천사라고 했고 누가복음에서는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라고 했고 요한복음에서는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라고 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마가복음에서 한 청년이라고 말한 것은 사실은 두 천사였으나 부활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 천사에만 초점을 둔 기록이었다는 거지요
그 천사를 보고 세 여인은 놀랐답니다. 여기 ‘놀라다’ 헬라어 ‘엑세담베데산’은 ‘몹시 놀랐다’ 또는 ‘완전 압도되었다’거든요 한마디로 정신 차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는 거지요 이것은 어느 때 모습일까요? 예수님 공중에 재림하실 때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의 부활이 먼저 이루어질 때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놀라움을 넘어 경악의 수준으로 바라보면서 진짜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말하던 부활이 정말이로구나 하면서 절망할 것이라는 거지요
6절을 보세요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이때 천사가 ‘놀라지 말라’ 그렇지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놀라움에 사색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환희와 기쁨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사의 말에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 구나’ 맞습니다. 세 여인은 십자가에 못 박히사 장사되신 예수를 찾아왔던 거지요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 모든 것이 정리되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존재인 줄 알았다는 거거든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으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사가 말하는 ‘살아나셨고’에 대한 결과가 무엇이랍니까?
‘여기 계시지 아니 하니라’지요 뭡니까?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겁니다. 분명 전과 같은 모습이지만 완전한 새로운 생명의 부활체로 죽음을 이겨내시고 살아나신 거지요 십자가의 죽음 없이 부활의 영광이 있을 수가 없지요 우리가 부활주일에 깨닫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죽어야 한다는 거 그래야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는 자가 된다는 거 아닙니까? 갈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삶 이것이 부활신앙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7절을 볼까요.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는 빈 무덤을 확인 한 세 여인에게 천사가 할 일을 말하잖아요. ‘가서’ 헬라어 ‘휘파게테’는 ‘떠나가다’의 의미니까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깊지요 기독교는 상처 나고 찢기고 피 멍든 죽은 시신을 향유로 닦으면서 위로를 받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는 거지요 구약시대 대제사장이 민족의 죄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갔다가 죽음으로 끝이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의 증거였거든요 성소에 들어갔던 대제사장이 살아서 나와야 민족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증거였잖아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죽음으로 끝이 난다면 자기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 대속의 죽음이 아니란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뭡니까? 지금 그 죽으심의 자리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이 되는 것이요 이를 믿는 자들에게 영광이 되고 은혜가 되는 거잖아요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 우리에게 영광이 되고 은혜가 되도록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세 여인이 전해야 하는 대상자가 놀랍게도 제자들과 베드로였었다는 거 아닙니까?
막14:31절에 “베드로가 힘 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그러나 실제는 마26:56절에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이래서 죄책감과 실망감으로 가득한 그들에게 전하는 거고 특별히 베드로의 이름을 말하잖아요.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저주까지 하면서 부인하며 배반했음에도 제일 먼저 ‘예수님이 다시 사셨고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는 부활의 사실을 여인들로 전하게 했다는 거지요 이는 뭡니까? 요13:1절에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의 판단이 맞았네요.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부활신앙을 갖게 되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 우리에게까지 부활의 복음이 전해져 우리를 날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생명으로 살게 하잖습니까?
그리고 갈릴리에서 만나리라고 전하지요 막14:28절에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이 말씀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하셨던 말씀이잖아요 그리고 제자들은 마28:16~17절에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예수님이 하신 약속이 실제로 성취 되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갈릴리입니까? 예수님 구원사역을 시작하신 곳이거든요 여기서 대부분의 제자들이 부름을 받기도 한 곳이지요 여기서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셨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기도 하셨고 유감없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던 곳이었잖아요 요6:68절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고백했던 곳 갈릴리 당신이 시작했던 그곳에서 부활신앙을 가지고 제자들이 다시 시작하기를 원하셨다는 거 아닙니까? 무엇이 죽은 자입니까? 부활신앙을 갖지 못한 자이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산 자입니까? 부활신앙을 가진 자이지요 지금도 그렇지요 실망과 근심에 싸인 우리를 먼저 찾아오셔서 다시 시작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믿으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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