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    |    |  
회원 로그인
회원 가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가입으로 서비스 약관개인정보 보호 정책 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주일오전 설교원고

bo_title_img1.png

요한복음13:1~11절 “무릎을 꿇고 발을 씻기시는 사람 되어 오신 하나님”  
카카오톡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주소복사
   김진수   작성일 21-03-19 15:14    조회 3,834    댓글 0  
 
요한복음1:1~11절 “무릎을 꿇고 발을 씻기시는 사람 되어 오신 하나님” 2021.3.21.
사순절은 숫자 40을 의미하는 헬라어 ‘테사라코스테’인데 벌써 스물아홉 날이 지나고 부활절을 열나흘을 남기고 있는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에 예수님이 보이신 충격의 사건 중에 하나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일 겁니다.

2절을 볼까요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여기 가룟은 원문엔 이쉬케리요트거든요 이쉬는 남자 또는 사람이고 케리요트는 지역이름이니까 케리요트 출신의 사람이라는 건데 지금 사도요한은 유다가 시몬의 아들이라는 것과 그의 출신지가 케리요트라고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거지요 예수님과 함께 했던 케리요트 출신의 찬송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유다인데 마귀의 조정을 받아 예수님을 팔아버리더라는 겁니다.
21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여기 ‘팔리라’ 헬라어 ‘파라도세이’는 ‘고의적으로 내어주거나 넘겨주는 것 또는 배반하다’는 의미거든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가룟유다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요 나는 아닌 것처럼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표정관리를 하고 있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귀의 특기이고 그를 따르는 자들의 모습이기도 한 거지요 고후11:14~15절에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이러니 다른 제자들은 아무도 몰랐을 거고 모두가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그렇지만 예수님을 속일 수는 없었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도 우리의 은밀한 중에 행한 일은 물론, 마음과 생각까지 우리 주님 앞에서 감출 수 있는 것이 뭐냐 아무 것도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이 주님께 묻잖아요. 25절에 그가 누구냐고 그러니까 26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이렇듯 유다에게 초를 적신 떡 한 조각을 주실 때 27절에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뭡니까? 예수님이 주신 떡 한 조각을 받은 직후부터 자신의 정체가 탄로가 났다고 생각한 마귀는 유다의 인생을 완전히 장악을 해버렸다는 거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하십니다. 제자들이 알았더라면 절대로 못하게 했을 일인데 예수님은 속히 하라고 하신 이유가 뭘까요?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간의 대속을 이루시려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러므로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을 제일로 우선하고 계시기 때문에 ‘속히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5절을 볼까요.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예수님의 이 모습은 종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손수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더라는 겁니다. 그 당시 팔레스틴 지역의 환경적 특수성은 육 개월 동안의 건기가 계속되는데다가 비포장도로로 이루어진 거리를 조리신발을 신고 웬만하면 걷습니다. 저희도 어렸을 때는 어지간한 거리는 다 걸어서 다녔잖아요. 그러니 그렇게 걷다가 집에 들어오든지 남의 집에 들어가든지 웬만큼 사는 집은 하인들이 나와서 본문의 예수님의 모습을 하고 흙먼지로 뒤덮인 발을 씻어주는 것이 풍습이었고 이것이 외부의 부정한 것을 깨끗이 씻어내는 정결예식으로 내려오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유를 3절에서 뭐랍니까?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 신 것이랍니다. 뭡니까? 마28:18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이것을 이룸은 십자가와 부활로 가능했었던 거지요 그리고 뭘 아셨습니까? 이 일을 이루신 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너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기 위함이요 이제 이 일을 이루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는 거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발을 ‘씻기시고 씻기기를 시작하였다’는 거지요 여기서 앞에 ‘씻기시고’ 헬라어 ‘닙테인’은 ‘물로 씻어내는 것’이라면 그 다음 ‘씻기기를’ 헬라어 ‘에크맛세인’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내는 의미’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개역개정성경에서는 같은 ‘씻기다’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발을 물로 씻어 낸 후 수건으로 그들의 발을 한꺼번에 다 닦아 낸 것처럼 이해하게 되지만 그게 아니라 씻고 닙테인 그 다음 닦고 에크맛세인이 반복이 되고 있는 모습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닦아주시면서 주님의 간절한 마음이 뭐라는 겁니까? 죄를 씻어내는 회개라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때 예수님의 마음을 읽은 베드로가 벧후3:9절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거지요 베드로사도가 말하는 예수님의 소원이 뭐예요? 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는 것 그리고 모두가 회개에 이르는 것 그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내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가룟유다와 베드로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린 여기서 예수님이  21절에 팔리라 26절에 내가 떡 한 조각을 주는 자가 그니라 27절에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유다에게 세 번의 기회를 주셨다는 거고 예수님을 배반하는 가룟유다나 반면에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하기를 세 번이나 한 베드로나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그러나 세 번이나 말씀하신 경고를 무시한 가룟유다와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으로 나가 심한 통곡으로 회개했던 베드로라는 거지요 회개의 기회를 놓쳐버린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버린 배반한 사람으로 남았지만 예수님을 저주까지 했었건만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큰 획을 긋는 사도로서 훌륭한 사역을 감당하게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6절에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그렇지요 베드로는 성격상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지요 황송한 이 일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자 7절에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베드로는 훗날 알았을까요? 벧전3: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그러네요. 그때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는데 나중에 십자가와 부활로서 구원하는 표가 물세례였었다는 거 그것은 육체를 깨끗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올바로 서는 선한양심의 회복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했을 때는 8절 전반절에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이 말씀을 원문대로 해석하면 ‘나의 발만은 영원히 씻지 못하십니다’라는 거거든요 이 말은 뭡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의 가치와 의미 따위는 모른다는 거고 다만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는 거고 예수님의 이 일을 영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을 육체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리라는 말씀에 항거까지 하면서 반대했던 베드로가 지금은 발 씻음이 부정과 불의를 씻어내는 회개를 나타내는 영적의미를 모른 체 원문에선 절대로, 그리고 영원히 라는 단어까지 써 가면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막으려했다는 거지요 베드로에게서 육체적 경외심은 있었지만 영적인 진리를 보는 안목이 약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신 거지요 요16:13절에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러니 성령의 도움없이 성경을 이해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8절 후반절에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뭡니까? 예수님으로부터 씻김을 받지 않는다면 누구도 죄에서 깨끗해 질 수 없다는  것이니까 얼마나 충격입니까? 이에 베드로는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그런데 원문에서는 ‘씻어주옵소서’가 없다는 거지요 우리 개역개정성경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번역을 하고 있다는 건데 원문대로는 ‘손과 머리까지’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오해가 뭡니까? 많은 부분을 씻으면 주님에게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는 오해지요 이게 9절이거든요 이에 대해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나요? 10절이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목욕과 발 씻음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까? 목욕은 예수를 믿을 때 얻는 것이라는 거고 다 목욕한 것은 아니라는 거지요 11절에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목욕에 대해 요한사도가 요일서1:7절에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목욕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심으로 받는 것이라는 거지요 베드로사도도 벧전1:18~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이제 예수님을 주로 믿어 목욕한 우리는 한쪽 무릎 꿇고 발을 씻으시는 사람 되어 오신 하나님의 준엄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반드시 발을 씻지 않으면 안 돼’ 회개는 배신자 베드로도 예수님 우편의 강도까지도 훌륭한 사역자로 그리고 아름다운천국으로 인도하신 것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날마다 회개의 삶이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일오전 설교동영상
공지사항
. .
.
교회앨범
비전센터 앞에 주차장이 이쁘게 완성되… 
동영상앨범
22년 낙도선교회
- -
-
선유중앙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회원가입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전체 최근게시글
  • 선유중앙교회 SNS를 방문해 보세요
    교회명 : 선유중앙교회 | 담임목사 : 김진수 | 주소 : 10811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독서울 5길 18-30
    교회전화 : 031-954-1080, 953-5977 | Fax : 031-954 1040 | 목사관 : 031-952-2097 | 이메일 주소 : yegrim@hanmail.net
    Copyright ©1955~2024   sunyou.or.kr. All Rights Reserved.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031-954-1080
    선유중앙교회 전화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