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    |    |  
회원 로그인
회원 가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가입으로 서비스 약관개인정보 보호 정책 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주일오전 설교원고

bo_title_img1.png

삿1:17~19절 “승리와 포기는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갈라집니다.”  
카카오톡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주소복사
   김진수   작성일 21-03-12 21:39    조회 3,620    댓글 0  
 
삿1:17~19절  “승리와 포기는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갈라집니다.”  2021.3.14.
부활주일 전 사십일을 교회력에선 사순절이라고 부르지요 사순절을 헬라어 ‘테사라코스테’라고 하는데 그냥 숫자 40이라는 말입니다 시인 이해인님의 사순절 기도 시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여전히 믿음이 부족했고 다급할 때만 당신을 불렀음을, 여전히 게으르고 냉담했고 기분에 따라 행동했음을, 여전히 나에게 관대했고 이웃에게 인색했음을, 여전히 불평과 편견이 심했고 쉽게 남을 판단하고 미워했음을, 여전히 참을성 없이 행동했고 절제 없이 살았음을, 여전히 말만 앞세운 이상론자였고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였음을 용서하소서 주님. 주여,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하셨습니다. 이 40 일만이라도 거울 속의 나를 깊이 성찰하며 깨어 사는 수련생이 되게 하소서 이 40 일만이라도 나의 뜻에 눈을 감고 당신의 뜻에 눈을 뜨게 하소서’ 여기 시인은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함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 보는 것에 대해 살펴보려고 하는 겁니다.

17절을 볼까요.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유다가 시므온과 합하여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진멸하였답니다. 여기 ‘스밧’은 망대라는 의미로 아마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가나안 족속이 위치해 있었기에 그만큼 차지하기가 매우 어려웠지만 유다지파와 시므온지파가 연합하여 이곳 스밧의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진멸했다는 것이 좀 그렇잖아요. 그러나 진멸해야 했다면 분명한 이유가 뭘까요? 신20:16절에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하나님의 명령이셨네요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내리셨다면 뭔가 이유가 있으셨을 건데 그 이유가 뭘까요? 신20:18절에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이들의 죄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전염이 되면 안 되니까 진멸하라 하신 거네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예언의 말씀을 하시길 창15:16절에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이 이들을 진멸하고 있는 것은 저들의 가득한 죄에 대해 심판의 성격이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저들이 죄악에서 돌아서기를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후 사백삼십 년을 기다리셨지만 저들은 오히려 죄악의 한계치를 뛰어넘고 있었다는 거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이 같은 죄의 전염을 막기 위해서라도 진멸해야만 했다는 거지요
유다와 시므온지파의 백성들은 망대라 불리는 천연 요새 스밧을 쳐서 진멸한 후 그곳 이름을 호르마 그 의미는 진멸 또는 봉헌이라는 건데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곳 스밧을 진멸하고 하나님께 봉헌하여 드렸다는 거지요 여기서 귀한 진리가 뭡니까? 망대와 같이도 난공불락과 같은 죄악으로 가득한 우리 심령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진멸되고 하나님께 드려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또 하나는 유다지파와 시므온지파의 연합이 주는 의미지요 우리가 예수 믿고 달라진 것은 뭡니까? 고전12:12절에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그래서 그리스도라는 한 몸은 머리는 그리스도요 지체들로 이루어진 몸은 성도들이요 그리고 한 몸이 된 우리가 할 일이 있잖아요. 히10:24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올 해도 예년처럼 변함없이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서 선교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교회의 저력을 또 보게 될 겁니다. 유다와 시므온이 힘을 합쳐 요새를 진멸해서 하나님께 봉헌해 드릴 수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우리 모두 힘을 합하여 선교와 이웃사랑실천을 통해 봉헌해 드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8절을 볼까요. “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여기 ‘지역’ 히브리어 ‘께불라’가 세 번 나오는데 ‘그 도시들의 경계’를 의미한다는 거지요 망대라는 의미의 스밧만이 아니라 그 주변을 유다 지파가 혼자 힘으로 정복했다는 건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남쪽과 서쪽 해안 그리고 북동쪽으로 있는 지역들이었다는 거지요 이렇듯 넓은 지역을 차례로 정복할 수 있었던 분명한 이유를 19절 상반절에서 말씀하지요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심’ 그랬구나 시므온과의 연합도 중요하였지만 꼭 그래서 승리한 것이 아니었네요. 그렇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함께 계실 때 승리할 수 있는 거고 하나님이 없이 혼자 가면 실패한다는 겁니다.
내 능력이 아무리 많고 돕는 손길이 많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승리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산지 거민을 쫓아낼 수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훗날 그 유다지파의 후손들인 유다백성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보이는 대제국 애굽이 함께 있는 것에 기대를 두고 바벨론을 막아보려 했었다는 거거든요 그 결과 주전586년에 바벨론제국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백성 대다수가 포로로 바벨론으로 끌려갔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계실 때 승리요 나 혼자서 아니면 다른 것을 의지할 때는 결코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28:7절에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우리도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돈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며 호흡이 끊어질 인생이 나를 구원할 수 없으며 오직 여호와만이 나의 힘이시고 방패시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승리케 하실 것이고 우리는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체험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19절하반절을 보시지요.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여기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심으로 산지 주민을 쫓아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골짜기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원문대로 해석을 하면 ‘그러나 그들은 골짜기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철병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거거든요 여기 ‘골짜기’ 히브리어 ‘에메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작은 골짜기가 아닙니다. 병거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농사를 지을 수도 있고 가축을 방목할 수 있을 만큼 계곡이라기보다는 훨씬 넓은 평평한 지역을 말한다는 거지요 보통 ‘골짜기’로 번역되고 있는 ‘까예’보다는 훨씬 넓은 골짜기를 ‘에메크’라고 부르는데 이 ‘에메크’보다 더 넓은 골짜기를 ‘삐크아’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에메크라고 부르는 중간 정도의 오늘 본문의 골짜기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뭐랍니까? ‘철 병거’라는 거지요 그 당시 이 철 병거는 가공할 만한 무기로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다와 하나님이 함께 계셨음으로 산지주민은 쫓아냈지만 철 병거를 가진 골짜기 주민들은 쫓아내지 못한 것이 우리 하나님이 철 병거에는 약했기 때문이라는 겁니까? 아니지요 이 세상에 하나님보다 강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뭡니까? 유다지파사람들의 눈에는 철병거가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였다는 거지요 그래서 믿음이 없어서 포기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다지파사람들이 철 병거를 가진 골짜기의 주민들을 보고 자신들을 보니 자신들이 너무나 초라했다는 거지요 그래서 자신감을 잃어버렸다는 거고 골짜기를 향해 돌진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는 겁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뭡니까? 철 병거와 비교할 수 없이 크신 하나님의 임재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산지주민들을 상대하던 것처럼 똑같이 골짜기 주민들을 상대했더라면 저들이 자랑하는 철 병거는 고철들로 변했을 거고 골짜기의 가나안족속마저 진멸할 수 있었을 거라는 거지요 왜냐하면 사십 년 전 애굽의 군대가 철병 거로 홍해 바다까지 이스라엘백성을 뒤 쫓아왔었잖아요. 그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출15:4절에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그렇다면 바다처럼 골짜기도 뒤집어놓으실 거고 철병 거를 충분히 무용지물이 되게 하실 수 있으셨을 건데 유다지파사람들은 이런 전능하신 하나님을 스스로 제한하여 하나님보다 오히려 철병 거를 훨씬 크게 봄으로 목전에 두고도 진멸하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는 거지요 하나님은 산지라서 할 수 있고 골짜기라서 할 수 없는 분이 아니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끝까지 의지했다면 베드로도 바다를 밟고 걸으면서 예수님께로 갔다가 예수님과 함께 물 위를 걸어서 다시 배에 올랐을 겁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순간적으로 파도가 더 크게 느껴졌고 결국은 바다에 빠져 들어가는 실패를 맛보게 되고 말았잖아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크신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뭐라셨나요? 하나님을 믿되 겨자씨 한 알과 같은 믿음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산을 옮긴다고 하셨잖습니까? 우리의 눈엔 무엇이 보이나요? 하나님보다 큰 존재는 없음을 알고 하나님만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시42: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모든 것 위에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시므로 포기보다는 승리를 경험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일오전 설교동영상
공지사항
. .
.
교회앨범
비전센터 앞에 주차장이 이쁘게 완성되… 
동영상앨범
22년 낙도선교회
- -
-
선유중앙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회원가입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전체 최근게시글
  • 선유중앙교회 SNS를 방문해 보세요
    교회명 : 선유중앙교회 | 담임목사 : 김진수 | 주소 : 10811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독서울 5길 18-30
    교회전화 : 031-954-1080, 953-5977 | Fax : 031-954 1040 | 목사관 : 031-952-2097 | 이메일 주소 : yegrim@hanmail.net
    Copyright ©1955~2024   sunyou.or.kr. All Rights Reserved.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031-954-1080
    선유중앙교회 전화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