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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9:1~10 “바늘귀를 통과한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신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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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1-01-14 19:23    조회 4,202    댓글 0  
 
누가복음19:1~10  “바늘귀를 통과한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신 자들” 2021.1.17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신종어가 코로나블루지요 코로나로 인해 생긴 우울증이라는 건데 이것이 일 년 가까이 지속되다보니까? 코로나레드라고 코로나로 생긴 분노랍니다. 이젠 코로나블랙이라고 코로나로 인해 생긴 최악의 절망을 나타낸다는 거지요 이런 때 우리에게 힘을 더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임을 기억하면서 바늘귀를 통과한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신 자들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절을 볼까요.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예수님이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 길 가에 앉아 있던 거지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고 그리고 예수님은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는 겁니다. 우연일까요? 아니지요 하나님의 계획 속엔 절대로 우연이란 없지요 우리의 모든 범사에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 것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는 이 길에 펼쳐질 일들에서 어떤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지를 발견해보자구요
2절을 보세요.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예수님이 찾으신 곳 여리고에 부자요 세리장이요 삭개오라는 사람을 만나시기 위함이셨다는 걸 알게 되지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네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삭개오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만나고자 하셨을까요? 10절에서 그 사실을 밝히지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삭개오는 잃어버린 자였었다는 거지요
여기서 우리 개역개정 성경에서 번역을 생략한 것이 원문에 ‘카이 이두’ ‘그리고 보라’거든요 그러니까 원문은 ‘그리고 보라’ ‘삭개오’를 특별히 주목시키고 있다는 거지요 3절을 보시지요.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이 말씀에서 삭개오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보고자 했다는 건 단순한 호기심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떤 마음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여기 ‘그가 ~ 하되’ 헬라어 ‘에제테이’는 ‘집요하게 찾아’ ‘제테오’의 미완료형이니까 ‘그가 계속해서 집요하게 찾고 있었다.’거든요 그리고 ‘보고자’ 헬라어 ‘이데인’이 ‘에제타이’ 바로 뒤에 나오면서 ‘보기 위해서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니까 작은 키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예수님을 볼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예수님을 보려고 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단순한 호기심은 아니었다는 거잖아요 그 동안 동족 유대인들에게 삭개오는 자기 배만 불리는 자요 로마의 끄나풀로 여겨 매국노라는 비난과 이로 인해 어울릴 수 없는 철저하게 외톨이가 된 처지와 마음의 상처 그리고 절대로 행복하지 않은 마음 그래서 돌파구가 필요했을 거고 위로 받기를 원하는데 삭개오의 귀에 들린 창기와 세리 같은 죄인의 친구가 되신다는 특별한 사람 예수님 그래서 여리고를 지나시는 예수님을 집요하게 찾고자함이 아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삭개오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리고를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꼭 봐야만 했던 거지요 그래서 4절에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이 말씀에서 호기심이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이 지나가실 길을 먼저 달려갔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이 지나가시기를 기다렸다는 겁니다.

5절을 보시지요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는데 오히려 예수님이 삭개오를 보고 계셨다는 거지요 여기서 깨닫는 것이 있지요 사65:1절에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삭개오가 그랬듯이 그리고 우리가 그러했듯이 원래 우리는 하나님을 구하지도 찾지도 않았었잖아요. 그런 우리가 사람에게 실망하고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과 문제 앞에서 예수님이라면 위로가 되어주실 거고 희망이 되어주실 거라는 기대를 갖는 우리를 보시고 너희가 찾던 내가 여기 있다하셨다는 거잖아요 지금 이런 삭개오에게 ‘삭개오야 속히 내려와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하신 거지요 여기서 놀라운 건 뭔가요? 예수님이 삭개오의 이름을 알고 부르셨다는 거잖아요 모세의 말이 기억나네요. 출33:12절에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그랬구나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너’는 이라고 인칭대명사를 사용해도 되실 텐데 이미 오래전에 알고 계셨던 것처럼 ‘삭개오’야 라고 부르셨다는 거지요 그리고 ‘속히 내려오라’고 우리 개역개정성경에서는 생략하고 있는 이유접속사 ‘가르’가 있어서 원문대로 해석하면 ‘왜냐하면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니까’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겠다’ 헬라어 ‘데이’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의미하는 말씀을 하셨다는 거거든요 예수님이 돌무화과나무에 앉아 있는 삭개오를 보면서 그의 겉모습만 보신 것이 아니라 뭡니까? 내면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보셨다는 거지요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모든 것들과 죄에서부터 예수님을 만나 자유하려는 의지의 변화를 보셨다는 겁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초청하는 말은 없었지만 예수님을 영접하는 마음을 읽으시고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고 네 집에 반드시 손님이 되기를 스스로 원하셨다는 거지요 이에 대해 삭개오의 반응이 6절이지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즉각적 순종이지요 그리고 즐거워하며 영접했답니다. 예수님은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어느 정도 엄청난 권세입니까?  지금까지의 죄책감과 불행하다는 생각 그리고 외로움과 온갖 나쁜 마음들이 바람 빠지고 있는 풍선처럼 모두 다 사라지고 대신 놀라우리만큼 큰 즐거움 기쁨으로 채워지는 완전 달라지게 하는 권세 중에 권세 큰 권세가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군다나 믿는 자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본향이 바뀌는 것이니 정말 큰 권세이고 이것이 사실이기에 영혼이 즐거워지는 거 아닙니까? 이걸 모르는 사람들은 7절에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비난하더라는 거지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 하시려 오신 예수님이 잃었던 삭개오를 찾으시고 그와 함께 먹고 마시기 위해 들어가신 것을 죄인의 집에 유하기 위해 들어갔다면서 수근 거렸다는 거지요 여기 ‘수근거려’ 헬라어 ‘디에공귀존’은 예수님에 대해 ‘일치된 마음으로 계속적으로 못마땅하게 여겨 불평하였다’는 거거든요 이들이 정말 잃어버린 자들이요 자신들이 손가락질 하던 삭개오보다 더 악한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8절을 볼까요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님 만나게 되면 회개하게 되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겁니다. 삭개오는 죄인인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친구가 되어 네 집에 반드시 유하여하겠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서 쉽지 않은 결정을 하지요 삶의 목적으로 알고 모아왔던 자신의 소유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답니다. 남의 것을 속여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나 갚겠답니다. 입술로만이 아닌 것이 ‘주겠다’ 헬라어 ‘디도미’와 ‘갚겠다’ 헬라어 ‘아포디도미’는 모두 현재시제로 자신의 종들을 통해 지금 재산을 나누어주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가 있는 단어라는 거거든요
뭡니까? 지금까지 삶에서 철저하게 돌이키고 있음을 본다는 거지요 이 모습에서 부자관리가 생각나지요 부자 관원 역시 삭개오처럼 큰 부자였고 삭개오와 다른 점은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키면서 살았다는 거고 삭개오는 깨끗한 그리고 순결한 이라는 이름의 의미와는 다르게 자신의 동족을 상대로 더럽게 또는 악하게 죄인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돈을 모으는데 혈안이었던 삶을 살았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부자관원은 가난한 자들에게 네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날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많은 재산으로 인해  근심하고 떠났으나 삭개오는 나누어주라는 말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산을 반 나누겠다고 말한 거지요 예수님은 부자관원의 모습을 보면서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마치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쉽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삭개오는 부자가 통과하기 쉽지 않은 그 바늘귀를 통과한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삭개오는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라는 거지요 예수님이 선언하시지요. 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여기 ‘이르렀다’ 헬라어 ‘기노마이’는 순간적으로 발생했다는 겁니다. 삭개오가 회개하자마자 그 순간에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일어났다는 거지요 삭개오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정죄하였지만 회개하는 순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순간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예수님이 말씀을 하신 거지요 뭡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때 순간적으로 된다는 거지요 우리가 그렇습니다. 예수 믿고 회개할 때 구원이 임했고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녀가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삭개오가 변화될 수 있었던 주요원인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의 먼저 사랑이지요 우리도 그렇지요 요1서4:9~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삭개오가 부자로서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었던 건 오직 하나 예수님의 먼저 사랑 때문이었던 거고 우리도 삭개오 못지않은 세상 것으로만 가득한 부자였었잖아요 절대로 바늘귀를 통과할 수 없었던 자들이었거든요 그런 우리가 마귀의 집요함을 물리치고 세상 것들을 분토처럼 여기고 하늘나라를 소유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먼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축복된 사람들이라는 걸 올 한해도 기억하며 감사하며 즐거워하며 사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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