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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6:20~22 “2021 새해를 예수 주신 기쁨으로 희망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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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12-31 18:30    조회 105    댓글 0  
 
요16:20~22  “2021 새해를 예수 주신 기쁨으로 희망 열기” 2021.1.3   
육신으로는 더 이상 제자들과 함께 있을 시간이 없음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앞으로 있을 핍박에 대해 그리고 제자들과 성도들을 돕기 위해 성령님이 오실 것까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너무나도 당연했지요. 16절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뭡니까? 조금 있으면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으로 죽으신다는 거고 또 조금 있으면 부활로 인해 다시 보리라는 의미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제자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제자들의 반응이 뭐였나요? 17절에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했다니까 모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요 그렇지만 제자들이 느끼는 것은 뭡니까? 예수님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비장하셨다는 거지요 그래서 19절에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여기 ‘서로 문의하느냐’는 말씀은 ‘세상지식으로는 아무리 탐구해도 답을 얻을 수가 없어’ 그런 말씀이지요. 사실이 그렇지요 주의 말씀은 사사로이 풀어서 풀리는 말씀이 아니고 철학처럼 사색을 통해서 답을 얻는 것도 아니고 연구해서 풀어질 말씀도 아니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위대한 교사가 되시는 성령님을 의지할 때만이 내게 뭘 말씀하시는 지를 깨닫게 된다는 거 아닙니까?

20절을 볼까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새로운 시작을 하여야 할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에 대한 세상 사람들과 제자들의 매우 엇갈린 반응이 있을 것에 대해 아주 의미심장한 의미로 진실로 진실로 두 번 연거푸 말씀하신 겁니다.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하리라’ 여기 세상 헬라어 ‘코스모스’는 어둠의 세력이요 이 어둠의 세력에 지배당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의미하는 건데 왜 저들이 기뻐합니까? 예수님을 그렇게 죽이기를 꾀했었는데 마침내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일 수 있었기 때문이란 거지요. 그렇지만 이 기쁨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말씀하잖아요. 그걸 뜻하는 단어가 바로 뒤에 나오지요 제자들에게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뭡니까?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곡하고 애통하며 근심하게 되는 일이 있지만 그렇지만 어떻다는 겁니까? 오래가지는 않는다는 거지요 곧 기쁨으로 바뀐다는 겁니다. 코로나19가 걸려도 ‘이젠 괜찮아 왜냐하면 예방백신도 나왔고 치료제도 나왔거든’ 아마도 이런 말을 하게 될 거고 ‘코로나19가 오래가지 않을 거야’ 이 말을 하게 되는 배경은 곧 예전의 자유한 생활로 돌아가게 될 거라는 거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여러 부분에서 겪고 있는 곡하고 슬퍼하고 근심했던 모든 것들이 새해를 지금 막 첫 주를 시작하면서 근심하겠으나 오래가지 않을 거야 기쁨으로 바뀔 거야 희망을 품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실제로 그 당시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성경구절들이 있어서 한 번 살펴보면 좋을 것 같네요 요20:19절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모두 닫을 정도로 자신들의 신변에 대해 염려하고 근심 중에 있었다는 거지요 이런 이들에게 모두 닫아 걸은 문들을 열고 닫음이 없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셨다는 거고 에이레네 평강이 있으라는 말씀까지도 하셨다는 겁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요20:20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정말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근심은 오래가지 않았고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는 뭡니까? 희망을 이야기 하신 것이 실제로 희망을 거두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겁니다. 올 2021년 한 해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순종하다가 그 말씀대로 희망을 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1절을 보시지요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예수님이 뭘 예로 들었습니까? 해산을 앞둔 산모잖아요 해산의 날이 가까이 오면 올수록 근심 또한 커지거든요 2천 년 전엔 어떠했겠어요? 아이 낳다가 죽는 일이 흔하게 있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러니 해산이 가까이 오게 되면 산모가 겪는 것은 육체적으로 힘든 것만 있는 것이 아니요. 해산이 임박해지면서 심리적불안감으로 더욱 힘들게 되는 거지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대제사장으로부터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을 말씀하셨을 때부터 그리고 그 날이 가까이 올수록 제자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불안감 역시 해산을 앞둔 여인처럼 클 수밖에 없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산모가 아이를 순산하고 나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거지요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인해 해산하면서 겪었던 불안감과 모든 아픔과 고통을 잊게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인즉 예수십자가도 같은 의미란 거지요 해산의 고통이 십자가로 인해 겪는 고통이라면 생명을 낳은 기쁨에 그 고통 다시 기억하지 않는 것은 부활로 인해 모든 믿는 자들을 생명으로 낳게 하는 기쁨 때문이라는 거를 말씀하신 겁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 뭐라 말씀하셨나요? 요12: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이유가 뭡니까? 그 이유를 말하는 두 단어가 오늘 본문 예수님의 말씀에서 발견되는데 ‘세상’과 ‘사람’이라는 거잖아요. 예수님이 ‘세상’과 ‘사람’이라고 의도적으로 말씀을 하셨다는 거지요. 사실은 ‘집에서는 아기 난 기쁨으로 모든 고통을 잊는다’고 말씀해야 되는 것을 ‘집’대신 ‘세상’ 헬라어 ‘코스모스’라고 ‘아기’대신 ‘사람’ 헬라어 ‘안드로포스’로 말씀한 겁니다.
이것은 요3:16절 말씀과도 같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나오지요 하나님이 사랑한 세상 그리고 그를 믿는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거거든요. 오늘 예수 생명을 가진 우리의 삶 속에서 때론 곡하고 슬퍼하고 고통 하지만 거기서 당신의 생명으로 가득 채우시기를 원하심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상 천지에 나 한 사람이 뭐라고’ 아닙니다. 나 한 사람이 어떻게 난 사람입니까? 당신의 십자가 고통으로 난 사람이잖아요. 이것을 물과 성령으로 낳았다고도 하잖아요.요1서5:1절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관심은 세상 속에 ‘나’라는 거 당신의 피로 난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는 거 21년도 하나님의 관심은 온통 세상 속의 나에게 쏟고 계심을 기억하고 우리 스스로 나 자신을 사랑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출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2절을 보시지요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제자들의 지금 모습은 근심하는 모습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제자들의 근심 된 이 모습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셨을 때 운명하셨을 때 절정을 이루게 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는 순간 그렇게 짓누르던 근심 대신에 기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뭡니까? 마음에 들어온 이 기쁨을 아무도 그 누구도 빼앗을 자가 없다는 거지요 여기서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하나는 제자들을 부활하신 예수께서 보신다는 데서 오는 기쁨인데 여기 ‘보리니’ 헬라어 ‘옵소마이’는 계속적으로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가 담겨있거든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날 관심 갖고 계속 바라보고 계신다’ 이 사실에 기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임한 기쁨을 그 누구도 빼앗을 수가 없는 우리가 소유한 기쁨의 영원성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먼저 주님의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요? 마28:20절이지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함께 하신다는 걸 아는 사람 구약의 다윗의 고백이 뭡니까? 함께 하시니 부족함이 없다는 것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내 잔이 넘친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복 있는 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누굽니까? 예수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까맣게 모르는 부활의 주님이 곁에 계신 자요 그로 인해 영원히 계속되는 기쁨을 가진 자들인 거지요 요15:1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세상이 주는 기쁨은 세상 조건과 환경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좌우되나 하나님이 우리 속에 두신 기쁨은 시편4:7절에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그렇습니다. 근심하겠으나 오래가지 않고 주의 기쁨으로  희망을 쏘아 올리는 새해가 되기를 바라고 예수를 모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해산의 고통은 잠시뿐이요 주님이 세상 속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풍성한 생명을 주시려는 것과 우리 속에 두신 기쁨, 식지 않는 기쁨, 영원한 기쁨,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으로 가장 어려울 때 새해를 희망으로 열어 가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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