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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6:37~46 “함께 깨어 있자 하신 예수님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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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10-02 19:58    조회 62    댓글 0  
 
마26:37~46 “함께 깨어 있자 하신 예수님을 봅니다”  2020.10.4.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에서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자신의 살이라고 식후에 잔에 찬 포도주를 주시면서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새로운 유월절의 의미를 부여하셨던 마지막 만찬이 끝이 나고 습관처럼 가신 곳이 겟세마네 기도의 동산이었지요. 겟세마네는 놀러 가신 것도 쉬러 가신 것도 아닌 끔찍하리만큼 고통과 사망의 순간을 맞이하기 전에 기도로서 이겨내시기를 위함이었다는 겁니다. 유월절 절기를 앞두고는 나귀새끼를 타시고 유대인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들어 가셨었고 예루살렘성전을 찾으신 예수님은 성전은 기도하는 집으로 회복되어야 함을 보여주셨다는 거잖아요. 여기서 예수님은 당신이 유대인의 왕으로서 유대의 주인이요 성전의 주인이심을 확실하게 보여주셨다는 것이고 이번 겟세마네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셨을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의 고민과 고통을 어떻게 보십니까?
37~38절을 볼까요.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 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여기 ‘고민하고’ 헬라어 ‘뤼페이스다이’는 ‘마음이 갈피를 못 잡을 정도로 괴로운 상태’라는 거거든요 그리고 ‘슬퍼하사’ 헬라어 ‘아데모네인’ ‘매우 슬퍼하여 근심에 싸이다’는 의미라는 거지요 여기에 ‘시작하다’ 헬라어 ‘에륵사토’가 원문엔 있는데 우리말 성경에서는 번역이 빠져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겟세마네로 가실 때 마음의 갈피를 못 잡을 정도로 괴로움과 근심에 싸인 큰 슬픔을 시작하셨다’는 해석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분으로 십자가 사건이 당신께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는 거지요
우린 이 세상에 살려고 왔다고 생각하지 그 누구도 죽으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죽음에 대해 용감한 사람이 실제로 있거든요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은 우리처럼 살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뭡니까? 죽으려고 오셨다고 하셨거든요 막10: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그 누구보다도 죽음에 대해서 용감하실 거라고 여겨지는데 어떻습니까? 이제 말씀하셨던 그 대속의 죽음을 앞두고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근심에 싸여 슬픔에 젖으시며 괴로워하셨을 뿐만 아니라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거 아닙니까?
이런 상태에 계신 예수님이 세 제자에게 나와 함께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시더라는 거잖아요. 여기 ‘깨어 있으라’ 헬라어 ‘그레고레이테’는 ‘육신의 잠을 자지 마라’는 의미가 아니라 ‘시험에 들지 않도록 경성하여 있으라’는 의미거든요 그리고 명령형을 사용함으로써 뭡니까?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라는 의미를 더해 주고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보다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해 기도해주는 차원을 넘어 뭡니까? 육체적 연약함으로 인해서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할까봐 그래서 시험에 들 것을 염려하셨다는 거지요 이를 눅22:40절에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랬구나 육신의 잠을 자는 것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기도에 실패함으로 찾아오는 유혹과 시험에서 넘어 질까봐 깨어있을 걸 말씀하셨다는 거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는 다는 겁니다.
나귀타고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유대인들의 기대가 대단했었거든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한 기대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폭삭 꺼지는 것은 물론 그들의 소망 또한 예수님과 함께 죽는 거잖아요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인데 구속사적으로는 죽으셔야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게 아니잖아요. 환호하는 수많은 유대인들과 더불어 로마의 군대가 주둔해 있는 총독의 관저를 향해서 거침없이 돌진해서 총독을 끌어내리고 그의 군대를 궤멸시키고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왕의 자리에 올라 다윗의 때처럼 이스라엘을 회복하기를 열망했을 건데 아!~ 예수님이 죽으신다면 이스라엘도 함께 죽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고민하여 죽을 지경의 마음이라는 거지요 유대민족의 혈통으로 그 중에서도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고 그리고 자기 땅에 오셨는데 자신의 등장으로 그렇게 좋아했던 자기 백성들이 겪게 될 쓰디쓴 실망에 대해 생각하실 때 고무풍선처럼 부풀었던 희망이 한 순간에 빠져버리고 말 저들이 겪게될 크나큰 실망을 예수님이 아셨기 때문에 유대인을 위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그래서 고통하고 그래서 근심하고 그래서 슬퍼하고 그렇게도 괴로워하셨다는 걸 예수님은 보여주고 계셨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이어서 겟세마네에서의 예수님이 하신 기도를 살펴볼까요.
39절을 보시지요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이는 겟세마네에서의 기도인데 눅22:39절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예수님의 겟세마네기도는 평소에 하시던 일 중에 일부였었다는 거지요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일처럼 멈출 수 없었던 일이 바로 기도의 자리를 찾는 일이었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간략한 겟세마네에서의 기도가 뭐였습니까?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하신 거잖아요 여기 ‘이 잔’ 헬라어 ‘포테리온’은 ‘일반적 물그릇’이거든요 이는 은유적 표현이지요 사실은 이 그릇은 죽음을 뜻하는 물이 한 가득 담긴 그릇으로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못 박혀 죽으실 십자가라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십자가 대속의 제물이 되기 위해 죽으려 오신 분이 이게 웬 말씀입니까? 그냥 지나가게 해 달라니요.
우리 개역개정성경에서는 헬라어 ‘아프’라는 전치사가 해석이 되고 있지 않은데 원문에서는 ‘무엇으로부터’라는 ‘아프’라는 전치사가 있다는 거지요 십자가의 죽음의 물이 가득 담긴 바로 그 잔으로부터 날 분리시켜 달라는 기도였다는 겁니다. 그렇게도 환호하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을 박으라는 이스라엘이 나서서 유대의 희망이자 세상의 희망이신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거고 예수님을 죽이려하면서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를 도무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걸 예수님은 내다보시고 계셨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는 거지요
이렇듯 유대인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오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을 박는 자기 백성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묻는 거지요 이 잔으로부터 날 분리시켜 달라고 다른 방도는 없느냐고 꼭 이렇게 해야만 되는 가고 하나님께 고통 속에 근심 속에 아픔 속에 슬픔 속에 괴로움 속에 눈물 속에 묻고 계신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원은 그렇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라고 기도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행동이 뭡니까?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리심’이라는 거지요 이는 간절하고 애절하게 기도할 때 하는 유대인들의 풍습이기도 한데 예수님은 그만큼 간절하셨다는 거 아닙니까? 다른 방법이 없는 당신의 백성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내어주는 것으로 인해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받을 심판을 아파하시면서 절망감으로 인해 이마를 땅바닥에 박아 버리셨다는 거거든요  자!~ 이렇게 기도하시다가 취하신 행동이 뭘까요?

함께 깨어있자 하신 예수님을 봅니다.
40절을 보시지요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당신의 백성들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줌으로 받을 그 고통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아셨기에 이 잔이 내게서 그냥 지나가기를 간절하게 기도하셨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로 오셨다는 거지요 자!~ 38절에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이들 세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나와 함께 깨어 있자 하셨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도하셨다는 거거든요 그리고 기도하신 후에 예수님으로부터 깨어 있으라고 명령 받은 세 제자에게 다시 오셨다는 거지요 그런데 깨어있으라 했는데 예수님이 보신 모습은 제자들이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잠을 자고 있었다는 거지요 이런 모습에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고 하시면서 심히 괴로워하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 잔 ‘포테리온’ 그냥 물그릇이 아니라 죽음이 담긴 ‘그릇’이지요 죽음의 십자가를 제자들이 함께 마실 수 없음을 아셨지만 그래도 그들이 같이 기도의 자리에 있기를 원하셨다는 거 아닙니까?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에 가셨고 제자들에게 여기 있으라 하셨고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기도의 자리까지 데리고 오셔서 그래도 이들은 기도로 깨어 있기를 원하셨건만 유대민족이 자신을 죽는데 내어줌으로 당할 큰 고통을 생각하시면서 슬픔에 젖어 기도하신 후 와서 보니 자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예수님은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도 아셨고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님을 버리고 제자들이 다들 도망칠 것도 아셨지만 예수님은 저들이 예수님과 함께 깨어있기를 원하셨고 함께 깨어 있자고 명령하셨다는 거잖아요.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깨닫습니까?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지요 임마누엘이셨음을 보여주셨다는 거거든요 그 이름처럼 제자들이 연약하여 있을 때에도 함께 하자시며 찾아오신 예수님이시고 훗날 성령의 역사로 능력으로 일할 때도 예수님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모습 그대로 그 연약함에 젖은 그들을 사랑하셨고 그들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고 계셨다는 겁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발자취를 쫓는다하지만 연약하기가 그지없잖아요 제자들보다 나은 가요? 아니요 더 못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잖아요 그러나 이런 우리를 보시면서 안타까와는 하시지만 정죄하시지 않으신다는 거고 그래도 함께 하시려고 찾아오신다는 거 아닙니까?
좁은 길 십자가의 길 함께 하자 그 명령을 모두 받았건만 오셔서 잠을 자고 있는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이는 우리에게서 고통스러움을 가지시지만 실망하시기보다는 그래도 여전히 함께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43절이지요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한 번이 아니지요 두 번째로 당부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다시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또 다시 오셔서 연약한 그들에게 46절이지요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걸 우리로 깨닫게 하신다는 겁니다.
지금 가장 힘든 십자가 수난을 앞두고 계실 때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그들을 찾아와 주시고 함께 하셨다는 거지요 반면에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이 실망을 주신 것이 아닌데도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 실망하게 한 일인데도 거룩한 공동체를 떠나기를 원하고 주님 주신 사명까지 버리려 할 때가 많다는 거 아닙니까? 예수님은 지금 실망하고 있는 우리들 연약하기만 우리들에게 언제나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깨우십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시는 걸 기억하고 여전히 나에게 신뢰를 보내시는 주님과 함께 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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