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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6:6~1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충돌하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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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09-11 21:50    조회 5,774    댓글 0  
 
눅6:6~1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충돌하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2020.9.13.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 선포하시면서 기적이 동반되는 치유의 역사와 더불어 죄에서의 용서 그리고 약하고 잃어버린 것으로부터 회복을 보여주실 때 사람들은 무리가 되어 뒤를 따르니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내내 행복하기가 그지없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몸으로 또는 말씀으로 가르치셨고 때론 훈련을 통해서 제자들을 만들어 가셨다는 거지요 예수님은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언제나 자상하고 부드러운 아버지처럼 품어주셨다는 겁니다.

그러나 다는 아니지요 예수님이 귀신을 내어 쫓는 모습을 보면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 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의 사역이 아니라 귀신의 사역이라고 했다는 거지요 이런 바리새인을 향해서 예수님은 충돌하시잖아요. 마12:34절에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여기 ‘독사의’ 헬라어 ‘에키드논’ ‘자식들’ ‘겐네마타’의 의미는 ‘독사에게서 난 자’들이라는 거거든요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공격해서가 아니지요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신들의 인간의 의와 거룩을 나타내는 외식을 보면서 통탄하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들을 독사라고 하심은 독사가 물어 그 독으로 사람을 죽게 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영적으로 죽게 한다는 거 아닙니까? 예수님은 이것을 심각하게 보셨던 거지요
요한사도는 자신이 기록한 요한복음 1장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신 하나님은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하시므로 창조주시라는 거지요 그분이 사람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나셨다는 거고 11절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여기 ‘자기 땅’이랍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유대인의 혈통으로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이스라엘 땅에 오셨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자기 땅에 살고 있는 자기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는 거고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렇지요 말씀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유대인의 혈통으로 자기 땅 유대 땅에 오셨을 때 좋은 소식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겐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고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이라 하시면서 종교지도자들인 저들과 충돌하시는 것에 대해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보면서 깨닫는 것이 뭐냐 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 땅인 이스라엘과 자기 백성인 유대인들을 속박하는 로마제국에 대해선 충돌은커녕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바라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예수님께 원하는 것이 뭡니까? 예수님이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과 충돌할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과 그들이 보낸 점령군과 충돌해주기를 원했다는 거지요 그러나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님이 로마에 대해 충돌은커녕 말로도 대적했다는 걸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어떻든지 예수님을 로마와 충돌하게 할 목적으로 세금을 가이사에게 내야 옳으냐 내지 말아야 옳으냐 물었다는 거지요 이때 이들의 의중이 악함을 보시고 세금을 내는 돈을 보이시면서 이 돈의 형상과 글이 누구 것이냐 물으셨고 가이사의 것이요 하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리고 성전 세를 드릴 때는 오직 유대돈만 받거든요 그래서 데나리온이라는 로마돈을 바꿔서 세겔이라는 유대돈으로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고 하셨다는 거지요 만약 세금을 드리지 말라고 했다면 로마와 충돌하게 하려 했는데 바리새인들의 모략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는 거잖아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제국이 아닌 오직 유대인들을 향하여 가르치셨고 경고하셨으며 심지어 성전에선 장사하는 이들의 상을 둘러엎으시면서 내 집은 장사하는 집이 아니야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야 라고 엄중한 책망을 하셨다는 거고 여기에 불만을 가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하고 강하게 충돌하더라는 겁니다.

누가는 누가복음6:1~5절에서 예수님이 유대인 종교지도자들과 또 다른 것으로 충돌하고 있는 모습을 말하고 있잖아요. 안식일에 밀밭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밀을 손으로 훑어서 비벼 밀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바리새인들이 2절에서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뭡니까? 네 제자들이 손으로 탈곡하는 일을 해서 안식일을 범하고 있다는 거지요 이에 대해 예수님은 다윗의 예를 들지요 사울임금에게 쫓기던 다윗이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배고픔을 인하여 놉 땅에 있는 하나님의 성소를 찾아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떡을 구하니까 제사장 아히멜렉이 보통 떡은 없지만 하나님 앞에 진설되었다가 나온 거룩한 떡은 있다하면서 주게 됩니다.
이 떡은 제사장들만 먹게 되어 있는 떡이지만 다윗에게 주잖아요. 그런데 이 일에 대해 성경 어느 곳에서도 잘못되었다고 정죄치 않더라는 거지요 보이지 않으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다윗을 정죄하지 않으셨고 이제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들을 정죄하지 않으시는데 더군다나 안식일을 제정하신 분이 괜찮다 하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탈곡하는 일을 했다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정죄하더라는 거거든요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으로 인한 그들의 열심이 예수님을 대적하기에 이른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이 같은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반발했고 그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 다른 충돌의 사건이 기록된 오늘 본문 6절을 보시지요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 가사 가르치실 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여기 또 다른 안식일이라는 건 제자들이 밀을 까불려 먹음으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충돌의 빌미를 줬던 그 안식일이 아닌 다른 안식일이라는 거지요 이 다른 안식일에 사건이 일어난 곳은 회당이었고 거기에 오른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다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특별한 것이 눈에 뜨이지 않지요 그런데 7절을 보세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또 안식일 문제네요 지난 번 안식일에 관한 분명한 예수님의 정리가 있었건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거고 오히려 반발심을 가지고 안식일에 병 고치는 지 고발할 증거를 찾고자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전히 이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더불어 충돌하시는 걸 본다는 거지요 피하거나 눈 감고 지나가지 않으시고 덫을 만들어놓고 잡으려하는 저들을 향해 정면으로 충돌하시는 예수님을 본다는 겁니다.
여기 ‘찾으려’ 헬라어 ‘휴로신’은 단순히 찾는 것을 지나쳐 ‘적극적으로 탐색하다’는 의미거든요 뭡니까? 그러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허물을 찾기 위해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8절을 보실까요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서거늘” 이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쳐 놓은 덫에 걸려 들었구나 이젠 넌 끝이야 그랬을 거라는 거지요 이런 사실들을 이미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시니까 손 마른 자를 안 고치시면 되잖아요. 그러면 충돌을 피할 수 있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저들의 의중을 아시고도 적극적으로 충돌하시잖아요. 그것도 한 가운데 세우심으로 공개적인 충돌을 알리고 계심을 보지요 자 어떻게 전개되고 있나 계속해서 보실까요?
9절을 보시지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회당에 모든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하시는 이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엔 선을 행하는 것이 맞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맞다는 겁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생각은 뭡니까? 정 생명이 위급할 때만 아니면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니까 그러니 충돌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지요. 10절을 보세요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마가는 마가복음에서 이 부분을 기록할 때 예수님이 저들의 완악함을 근심하셨고 노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그 손 마른 사람의 손을 회복시켜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11절에 어떻습니까?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왜 예수님은 로마를 향해 충돌하기 보다는 유대인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충돌하셨을까요? 구원의 복음은 먼저 자기 땅 자기 백성들이 있는 예루살렘과 유대를 거쳐 사마리아를 뛰어 넘어 땅 끝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지요. 순수복음인 오직 예수 그리고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만이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인간의 의와 행함으로 구원 받겠다 하면서 외식과 위선에 차서 자기 백성을 잘못된 곳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충돌하시지 않으시면 안 되었던 겁니다.
인간의 의로는 하나님께 도달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고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의로 하나님께 갈 수 있게 하셨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은 눅12:1절에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마15:8절에서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들의 문제점이 뭡니까? 신학적인 것이 아니지요 도덕적인 문제 아닙니까? 위선이니까요? 겉과 속이 다른 것이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으로 살지 않는 거지요 그저 저들이 추구하는 것이 뭡니까? 자신들의 명예를 중시하는 것과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권리를 지켜내는 것이었잖아요.
이에 대해 예수님은 뭐라 경고하셨나요? 마23:27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예수님은 이런 모습에 충돌하신다는 거잖아요 간음한 여인과 충돌하셨나요? 아니지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하셨지요 로마제국과 충돌하셨나요? 아니요 하나님을 입술로만 사랑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해선 정죄하셨고 그들과는 충돌하셨다는 거지요 왜 그렇습니까? 이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다스리는 유대인들이 되면 안 되니까 그러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라 둘 다 망하니까 이런 지도력으로는 결과가 뻔하니까 그래서 속히 예수님이 구원하는 지도력으로 다스림을 받는 유대인들이 되어야 하니까 그래야 유대인들에게 희망이 있으니까 아니 유대인들을 시작으로 세계에 선택받은 구원 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니까
우리에게도 그런 게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들이대는 평가의 척도는 가혹하지요 그러나 반대로 나 자신에겐 관대해도 너무 관대하잖아요. 위선적이고 음란하며 외식과 욕심 그리고 교만, 하나님의 명예가 아닌 인간의 명예를 중시하고 섬김과 봉사보다는 권리만 탐하는 세상 역사에 사라져 버리고 없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습성이 묘하게도 우리에게 있음에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향해 충돌하시지 않을까요. 내가 아니고 예수님이 내 속에서 주인 되어 다스리게 하시도록 내 속에 있는 서기관적이고 바리새적인 것들이 속히 바뀌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에게 정죄하지 않으셨지요 위선과 외식으로 하면서도 잘 믿는 척하는 세력에 대해 예수님은 엄히 정죄하셨고 충돌하셨음을 기억하면서 우리 모두 주님이 날 충돌하실 수밖에 없는 이들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삶에 주인 되시는 이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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