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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4:23~24절 “예수님의 치유가 무엇을 증거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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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08-28 12:41    조회 6,215    댓글 0  
 
마4:23~24절  “예수님의 치유가 무엇을 증거합니까?” 2020.8.30.
태풍의 본색이라는 오보영님의 시에서 잎이 떨어지든 말든 가지가 부러지든 말든 상관이 없다 상처 입히는 게 상처 내는 게 목적이니까 뿌리가 흔들리든 뿌리가 뽑히든 상관이 없다 숲 망가트리는 게 숲 색깔 바꾸는 게 속셈이니까 라고 한 것처럼 코로나19의 본색이 그런 것 같습니다.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내는 게 목적 같고 망가트리고 색깔을 바꾸는 것이 속셈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지금 치유가 간절히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치유가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까요? 예수님 이후 이 세상에 그 어떤 이가 예수님에게 버금가는 치유의 역사를 일으켰을까요? 제가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보지 못했으니까 예수님의 치유는 어떤 사람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아주 특별했다는 거지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어떤 병인들이라 해도 눈으로 확인이 되게끔 완전하고도 깨끗하게 고쳐주셨다는 거거든요

오늘 본문 마4:23~24절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1)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헬, 그 나라의 복음을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시기도 또 천국복음을 전하기도 하시면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여기 ‘고치시다’ 헬라어 ‘데라퓨온’의 의미는 ‘육체의 치료만이 아니라 영혼의 치료’까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거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왜 예수님에게 이 치유사역이 중요한 것일까요?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 기전 600년 전에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실 일에 대해서 이사야가 예언하기를 사35:4~6절에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뭡니까?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다는 거지요 하나님이 사람으로 어떻게 오셨나요?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잖아요. 남자로 아니라 성령으로 여자의 몸을 빌려 태어나셨기 때문에 여자의 후손이라고도 하지요 창3:15절에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는 예언처럼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보복하시고 갚아주시기를 죄로 말미암아 마귀의 사망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지옥 갈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므로 사단에 대해 보복하셨고 갚아주신 거잖아요 이렇게 하나님이 사람으로 즉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이신 증거를 치유로서 보여주셨다는 거 아닙니까? 맹인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앉은뱅이가 사슴처럼 뛰고 벙어리가 노래하는 그야말로 광야와 사막 같은 삶이 물이 솟고 시내가 흐르는 삶으로 달라질 거라는 예언대로 각종 병에서 고통당하는 자들 그리고 귀신들린 데서 또는 간질 하던 이가 반신을 쓰지 못하던 자가 모두 고침을 받았다는 거거든요
우리 중에 예수님이 고치시는 것처럼 치유의 현장을 보셨나요? 아니지요 보지 못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치유사역이 얼마나 특별했나를 증거 했지요. 마12:15절에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그리고 마14:36절에도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어느 때는 치유가 일어났으나 어느 때는 치유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지요 어떤 사람은 고침을 받았으나 다른 어떤 사람은 고침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지요 예수님을 찾아 온 그들의 병을 다 고치셨다는 거고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았다는 것이 마태의 기록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시냐는 물음에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잖아요. 예수님은 성경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고 기록하고 있는 메시아 그리스도였다는 거지요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또 다른 증거가 뭐냐 하면 병든 사람이 예수님 앞에 없고 멀리 다른 공간에 있어도 마치 앞에 있는 병든 자를 고쳐주신 것처럼 그 병든 사람을 고쳐주셨다는 겁니다.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있었던 일인데 그곳 가버나움 장로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백부장의 종이 병 들어서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고쳐 주십사 하고 청을 하더라는 거지요 여기서 특이한 것이 마을 장로들이 점령군인 로마의 백부장의 말을 듣고 심부름을 하고 있다 뭐지요? 보통 점령군은 유대인들을 경멸하잖아요. 반대로 유대인들은 점령군을 증오한단 말이지요. 그런데 마을의 유대인들을 신앙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는 장로들이 백부장의 청을 전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부름을 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눅7:5절에서 말씀하지요 점령군의 대장으로 와 있으면서도 유대인들을 사랑하고 가버나움 회당을 지어주었다는 겁니다. 아, 그래서 가버나움 장로들이 발 벗고 나섰구나하는 걸 깨닫게 되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그 장로들과 함께 가십니다. 가시는 이유가 뭐냐 로마의 백부장이 유대인들을 사랑한다는 말 때문도 회당을 지어주어서도 아니란 거지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자기의 뜻대로 움직이고 계시는 예수님을 본다는 겁니다. 백부장의 집이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땐데 백부장이 보낸 친구들이 와서 백부장의 말을 전하지요 ‘주여 수고하지마세요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고 나 또한 주께 나아가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그러니 말씀으로 내 하인을 낫게 해주시라 했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백부장이 자신의 명령에 부하들이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종에게 이런 일을 하라 하면 하지 않느냐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는 이 보다 더하여 질병까지도 말귀를 알아 들을 거라는 거지요 그래서 낫게 될 거라는 겁니다. 이 말씀을 들은 예수님은 백부장의 이 같은 믿음에 크게 놀라워하셨다는 거지요 자기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없는 믿음이 한 로마인 백부장에게 있음을 놀라면서 그의 믿음을 크다 인정하셨다는 겁니다. 이 같은  믿음에 백부장의 종이 나았습니까? 눅7:10절에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네 나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질병에게 말씀으로 명하셨다는 거고 그 질병은 예수님의 명령에 의해 종에게서 떠나갔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만이 같은 공간 안에 없어도 있는 것처럼 역사하시는 분이시니까요 시139:2절에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무리 감추려 해도 그 사람의 앉고 일어서는 움직임을 아시고 멀리서도 사람이 뭘 생각하는지 밝히 아시는 분이라는 거거든요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이잖아요 모르시는 것이 없으신 전지하심이며 그리고 못하실 것이 없는 전능하심이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손을 대고 안수 하지 않아도 오셔서 축복하시지 않아도 말씀하심으로 나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의 치유와 같은 치유를 이 세상에 누가 할 수가 있을까요?
이천 년 동안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치유처럼 해보려고 했었거든요.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처럼 하는 이들이 없었지요.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세워지는 것은 마병과 병거와 칼과 창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갖 질병에 고통 하는 인간들을 치유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겁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바리새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옥에 갇혀 있는 세례요한마저도 ‘오실 그이가 당신이 맞느냐고’ 제자들을 보내서 확인하고자 하는 의심을 가졌다는 거 아닙니까? 세례요한의 제자들로부터 세례요한이 의심하는 질문을 들으시고도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치유의 사역을 멈추지 않으셨지요. 시간이 흐른 후 예수님이 입을 열어 자신이 행하는 치유가 증거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시잖아요. 눅7:22~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치유사역이 증거하는 것이 뭡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거고 그 치유를 통해서 임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셨다는 겁니다.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이 온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현실을 우리 모두가 보고 있잖아요. 예수님 시대엔 없었을까요? 나병이란 전염병이지요 나병환자가 20미터 가까이 오면 오지 못하게 돌을 던져서 쫓았고 집을 떠나 나병환자들끼리 모여 살았다는 거잖아요 그 당시 무서운 전염병인 나병에 걸린 환자들까지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고쳐주셨다는 거 아닙니까? 그 이후엔 장티푸스, 코레라, 이질. 폐렴, 결핵, 말라리아 무슨 약이 있었나요? 중세 때 쥐가 간염의 원인이 되는 것을 알 뿐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페스트 그 당시 약이 없었잖아요 오늘날 돼지를 한꺼번에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시키고 수많은 닭들 역시 땅을 파 매장시킴으로 더 이상 퍼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약인 것을 보잖아요 코로나19 역시 사람끼리 안 만나게 하는 것이 약이고 걸리면 격리시키는 것이 치료잖습니까? 한 살을 못 넘기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아서 한 돌이 되었을 때 무사히 살았다고 잔치하고 기껏해야 40에서 50 살았고 60이 넘게 되면 환갑이라고 자녀들이 잔치를 해드렸잖아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병원에서도 할 수 없고 병원에 갈 형편도 되지 못하는 이들이 예수님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질병으로 죽어가는 절박한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으로 구름떼처럼 모여 들었다는 거잖아요. 예수님에게 가면 치유가 되잖습니까? 마라의 쓴 물 앞에 서있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위해 여호와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셨고 모세는 그 나무를 들어 쓴 물에 던질 때 순식간에 단물로 변했다는 거지요 이스라엘백성들은 원망을 그치고 쓴물이 단물로 된 그 기적의 물로 목을 축이며 살아계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께 감사했을 겁니다. 이때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 하시지요 출15:26절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치료하는 이로 자신을 소개하셨던 그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으니까 사람들의 육신만 치료하신 것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쓴물 되어버린 세상인 죄인들을 위해 나무십자가에 대신 달리시므로 믿는 자는 영생하도록 사는 자들로 근본적인 치료를 하신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죄인이 의인되게 지옥에서 천국으로 마귀의 자녀가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소유로 근본적인 치료를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누구시라는 겁니까?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그리스도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고치시다’ 헬라어 ‘데라퓨온’이 되셔서 우리의 ‘육체의 치료만이 아니라 영혼의 치료’까지 주신 분이요 우리의 구주가 되어주신 분이요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시고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로 부족하지 않도록 계속 고쳐주시는 걸 믿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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