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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4:14~20절 “하나님의 나라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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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08-14 18:12    조회 6,574    댓글 0  
 
막4:14~20절  “하나님의 나라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집니다.” 2020.8.16.
인도엔 사람을 네 분류로 나누길 토지를 갖지 못한 노동자 그리고 평민 다음 왕이나 귀족 전사들 마지막이 가장 많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브라만으로 불리는 승려들로 나누는 카스트제도가 있었답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엔 신분을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나누는 양천제도가 있었지요. 오늘 막4:11절에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인데 예수님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씨를 받는 사람들의 종류를 모두 넷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겁니다.
 
14절을 볼까요.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여기 말씀을 뿌리는 자라면 누굴 말할까요? 마13:37절에서 설명하지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그렇다면 여기 말씀은 뭘 말하는 걸까요? 눅8:11절이지요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님이 뿌리는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뿌릴 때 말씀을 받는 네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먼저 그 첫 번째 사람을 볼까요?
15절을 보세요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길가와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졌다는 겁니다. 여기 ‘길가’ ‘파라 텐 호돈’은 ‘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의미한다는 거지요 이 길가는 밭일을 위해서 농부가 자주 오가다 보니 단단해져 버린 길이라는 겁니다. 길가와 같은 사람에 대한 본문의 설명이 뭡니까? 말씀이 뿌려지기가 무섭게 사탄이 즉시 와서는 뿌려진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길가와 같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거잖아요 마귀의 여러 역할이 있겠지만 여기서 그 중에 하나가 뭡니까? 말씀을 빼앗아 가는 역할이라는 거지요 마13:19절을 보세요.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여기 ‘아무나’는 ‘누구라도’ 그런 뜻이잖아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대상이 된다는 거지요 ‘길가’ ‘파라 텐 호돈’ ‘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이 시간이 바로 천국 말씀을 듣는 시간이잖아요 누가 찾아온다고요? 사단이지요. 말씀이 우리 심령에 들어가지 못하게 말씀을 빼앗아갈 목적이라는 거 아닙니까?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을 찾아온 사단이 요구하는 시험이 무엇이었습니까? 돌들로 떡을 만들어 골은 배를 채우라 뭡니까? 육으로 살라는 거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은 떡만 가지고 사는 존재가 아니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신8:3절 말씀을 하실 때 사단이 물러갔잖아요. 뭡니까? 내가 다른 생각에 잡혀 있고 피곤으로 인해 졸고 있다면 지금 사단이 와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지요.
오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지요 예수 믿는 순간 나는 죽고 하나님 안에서 다시 산 하나님의 나라라는 거룩한 존재가 된 것을 믿습니다. 예전에 예수 믿기 전엔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살았고 관심도 없었지요. 그랬던 우리가 하나님 말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동안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에 나와서 씨뿌리는 자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시는데 우리 옆에서 사단이 그 말씀을 냉큼냉큼 빼앗아가는 ‘파라 텐’ ‘밭에 좁은 길게 난’ ‘호돈’ ‘길’이 되면 안 되겠지요 그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또 다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16~17절을 볼까요.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질 때 돌 밭 같은 사람이랍니다. 돌밭의 특징이 뭐랍니까? 뿌리를 내릴 수가 없다는 거거든요 예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를 통해서 받은 이스라엘백성들은 어린양을 준비했고 그 어린양의 피를 자신들이 살고 있는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장자죽음이라는 심판의 날을 애굽사람들과 똑같이 맞이했잖아요.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하는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백성들의 집엔 장자를 죽이는 천사들이 대문에 뿌려진 피를 보고 그냥 다 넘어가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비되지 못한 애굽사람들의 집들에는 모든 장자들이 죽었다는 거거든요 이 심판을 겪은 이스라엘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를 따라 모두 애굽을 떠나가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지요 얼마 되지 않아 홍해 앞에 섰고 길이 없자 이스라엘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더라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손에든 지팡이를 가지고 홍해를 가리키자 바다가 힘을 잃고 길을 내놓더라는 거잖아요. 그러나 애굽의 군사들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새벽에 모세가 지팡이를 든 손을 바다를 향하니 바다가 다시 힘을 얻어 길이 사라지게 되면서 다 수장이 되었다는 거 아닙니까? 이 모습을 본 이스라엘백성들이 출14:31절에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세를 믿었다는 거거든요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으나 오래가질 못했지요? 돌밭이라 뿌리를 내릴 수가 없었다는 거지요 글쎄 사흘을 못갔다는 거예요 사흘 길을 갔을 때 물을 얻지 못하자 출15:24절에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바다의 힘을 잃게도 하시고 그 바다를 다시 힘을 주시기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이 세상의 물을 다스리시는 분 아닙니까? 그렇다면 먹는 물 못주실까? 노예 생활 400년에 남은 것은 불평과 불만뿐이지요 그러므로 돌 밭과 같아서 말씀이 뿌려지나 사흘을 가지 못했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누굽니까? 예수의 피로 과거의 삶을 청산한 우리잖아요. 이젠 사단의 노예가 아니지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왕자요 공주잖아요. 요4: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은 뭘 가리킬까요? 요7:38~39절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령은 보혜사 돕는 자잖아요. 왕자요 공주인 우리에겐 뭐가 있어요? 성령이 오셔서 도우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할 거고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실 거니까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믿고 감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원망과 불평에 젖은 삶은 아무리 귀한 말씀도 오래 못가지요 환난이나 핍박을 만나면 다시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니 이런 사람을 ‘페트로데’ ‘돌밭’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는 거지요 그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또 다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18~19절을 볼까요.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말씀이 뿌려질 때 이미 마음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있더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것들은 가시떨‘기와 같아서 말씀이 결실하지 못하게 하더라는 거지요 우리 개역개정성경에서는 ‘염려’ 단수로 되어 있잖아요. 그러나 원문에는 ‘염려’로 번역된 ‘메림나이’가 ‘염려들’ 복수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말씀을 들으려 하는데 여러 염려들을 가지고 있다는 거고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욕심이 주장하고 있으니 말씀은 말씀뿐이라는 거 아닙니까? 뭡니까?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처음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거거든요 이런 삶은 교회 다니는 것 빼놓고는 뭡니까? 세상 사람들하고 도무지 분별이 안 된다는 거지요 딤전6:9~10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부하려 하지 않는 자들이 어디 있었요? 그러나 믿음을 저버리고 부하려고만 하는 삶에 따라오는 것이 그 해로운 욕심으로 인해 파멸을 거두게 된다는 거 아닙니까? 이런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결실 맺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거지요 이런 우리에게 딤전6:17절에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돈이 다 해결해 줄 것 같지만 돈 때문에 좋은 사이가 원수 되고 그렇잖아요. 그러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면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에 후히 그리고 누리게 하신다는 거 아닙니까? 요1서2:17절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여기 세상염려들과 재물의 유혹과 여러 욕심들이 뭡니까? ‘가시떨기’ 헬라어 ‘아칸다스’라는 거지요 이것들 때문에 말씀이 자라지 못하게 말고 바울처럼 세상 것들은 분토와 같이 여기고 영원히 하나님 앞에 서게 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을 사시는 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또 다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20절을 볼까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길가 사람이나 돌밭사람이나 가시덤불사람이나 여기 좋은 땅의 사람이나 공통점이 뭡니까?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거잖아요 그러나 제대로 받는 것은 좋은 땅뿐이었다는 거지요 여기 ‘받아’ 헬라어 ‘파라데콘타이’는 ‘환영하다’는 의미거든요 그야말로 기쁨으로 받는 거지요 그러나 16절에 보면 돌밭에 사람도 똑같이 받았다는 거거든요 그렇지만 이 ‘받다’ 헬라어는 ‘람바노’로 일시적으로 받음을 말한다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람바노’는 결실이 없지만 ‘파라데콘타이’ 환영하여 말씀을 받는 좋은 땅의 사람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결실이 된다는 거지요
말씀을 받고 그냥 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마13:23절에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는 걸 알 수 있지요 깨달았다는 것은 뭘 의미할까요? 눅8:15절에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말씀대로 지키고 말씀대로 인내하는 걸 의미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은 말씀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요15: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우리 모두 본문에 ‘땅’ 헬라어 ‘겐’ ‘좋은’ ‘칼렌’ ‘겐 칼렌’ 좋은 땅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어디서나 ‘파라데콘타이’ ‘환영하자’구요
왜요 말씀이 보배이니까 시12:6절에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보배 같은 이 말씀은 시119:50절에는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고난 중에 실망하지 않고 위로를 주시어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롬15:4절에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위로로써 소망을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지요 롬1:16절은 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구원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니 정말 오늘 씨로 비유된 하나님의 말씀은 보배가 아닐 수가 없으니 ‘겐 칼렌’ ‘좋은 땅’의 사람이 되자구요 그러므로 늘 하나님의 말씀을 ‘파라데콘타이’ ‘환영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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