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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1:20~22절 “최악의 고난의 때가 최상의 감사를 드릴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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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06-26 18:02    조회 6,311    댓글 0  
 
욥1:20~22절  “최악의 고난의 때가 최상의 감사를 드릴 때입니다.”  2020.6.28.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불안한 가운데 교회들도 같이 긴장하고 정상적인 예배 모습이 아닌 코로나19에 맞춰진 예배를 드리면서 일 년 중 벌써 반년이 지나 예년 같으면 풍성한 중에 지낼 맥추감사주일을 한 주 앞둔 시기까지 어느 덧 이르게 되었네요.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잖아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중에도 이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면서 감사를 잃어버리지 않았던 오늘 본문의 욥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것이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살면서 부딪히는 한계지요
오늘 본문에 우스 땅에 살고 있는 욥이 1절에 소개가 되고 있지요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우스 땅의 위치는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고 유력한 학설은 아마도 풍습이나 어휘나 지리적 언급이나 역사적 배경을 볼 때 아라비아사막 북쪽에 위치하지 않았나 본다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지 못한 부분이 뭐냐 하면 욥이라는 한 개인의 신앙과 그의 경건함이 우주적 관심이었다는 겁니다. 6절이지요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여기 ‘하루는’ 히브리어 ‘와예히 하이욤’은 ‘바로 그 날이 이르렀다’거든요 그러니까 역사적인 날이라는 거지요 욥의 고난이 왜 시작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바로 그 하루 ‘와예히 하이욤’ 욥에게 일어날 역사적인 날이 천상에서 비롯되고 있었다는 겁니다.
천상의 모습을 보니 하나님 앞에 나열하여 선 하나님의 아들들 그리고 그 틈에 사탄도 함께 서 있음을 알게 됩니다. 여기 사탄은 알겠는데 하나님 앞에 서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아들들’ 히브리어 ‘뻬네 하엘로힘’이거든요 ‘아들들’이라고 번역된 ‘뻬네’라는 단어는 ‘만들어진 존재’라는 의미니까 ‘엘로힘’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피조물이니까 천사들을 말씀한다는 거지요. 8절에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이시지요. 하나님의 기준에 비하면 우리 인간의 신앙이란 것이 턱없이 모자랄 신앙일 텐데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 욥의 신앙을 사탄과 하나님의 아들들인 천사들 앞에서 칭찬하고 계신다는 거 아닙니까?
그것도 한 인간의 신앙에 대해서 자세하고 분명하게 아신다는 거지요 온전하다 그리고  정직하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또 하나는 악에서 떠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 이름도 없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섬기는 것을 우리 하나님이 다 아신다는 거잖아요.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주신 사명이 귀한 줄 알고 감당하고 있는 내 모습을 아신다는 거 아닙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임을 알고 최선을 다하는 그 마음과 행위를 우리 하나님께서 모두 모두 아신다는 거지요 이렇듯 욥을 아시는 하나님이 욥을 칭찬하자 사탄이 끼어들었지요 9절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노골적으로 하나님의 생각에 반박하고 거스르고 하나님과 성도 사이를 이간질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사탄을 본다는 거지요 욥의 신앙을 네 가지로 칭찬하는 하나님과는 다르게 사탄은 오직 하나만을 이야기하기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가 뭐냐는 거지요 하나님이 욥에게 많은 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경외하는 것이지 달래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가 사탄이라는 거 알겠는데 여기서 사탄은 이간질하고 고소하고 절대로 좋은 걸 좋게 안 보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하네요. ‘와예히 하이욤’ 욥에게 있어 역사적인 날 ‘그 하루’가 천상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는 겁니다.
세상에 부모들은 대부분 어떤가요? 자녀들이 출세하고 성공하여 잘 살기를 원하잖아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은 무엇에 주안점을 두었는지를 5절에서 말씀하지요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8절에 욥은 자신이 악에서 떠난 삶을 사는 것처럼 자녀들도 죄 짓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사는 것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렇듯 신실하기 만한 욥을  하나님께서 칭찬하셨다는 거고 더불어 사단의 고소가 들어가는지 욥이 어찌 알았겠습니까? 우리도 그렇지요 마스크를 쓰고 예배를 드리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타 지역을 갔다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찾았다가 우리 성도가 아니기 때문에 들어올 수 없다는 거절을 받게 될 걸 누가 알았겠습니까? 교회 입장 시 일일이 체온을 측정하고 방명록에 개인 신상정보를 기록하게 될 걸 누가 알았겠습니까? 석유 값이 폭락하고 공장과 식당이 문을 닫고 사업이 무너지고 비행기 하늘 길이 막히고 해외여행이 멈춰버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가 생겨나고 아이들 학교등교가 어려워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아이들이 집에 있다 보니까 일일이 집에서 식사문제를 해결해 주는 불편함이 생길 걸 누가 알았겠습니까? 늦게 퇴근하던 아빠가 코로나19로 일찍 집에 들어오다 보니까 들어와서 아내에게 잔소리가 많아져 부부싸움이 잦아지고 일찍 들어오는 아빠가 반가웠었는데 공부안한다고 아이들을 닦달 하게 되니 아이들은 방문 닫고 들어가서 안 나오는 대화 단절의 현상이 생길 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루 동안도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합니다.
야고보기자가 말합니다. 약4: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우리 인간의 현주소지요 욥이 참으로 생각지도 못할 기가 막힐 일을 당했다는 거지요 그 첫째 기가 막힐 일이 14~15절에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리고 두 번째 기가 막힐 일이 16절에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리고 세 번째 기가 막힐 일이 17절에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질 일을 만나게 되는데 18~19절에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웬 날벼락입니까? 맏아들 집에서 열 명의 자녀들이 음식과 포도주를 먹다가 큰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져 다 죽었다는 겁니다. 사탄이 하나님에게 기소한 내용이 뭡니까? 10절이지요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욥이 온전하고 정직하고 악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은 것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거였는데 하나님이 주신 그 많은 것들이 열 명의 자녀와 함께 졸지에 하루 동안에 모두 사라진 겁니다. 그렇다면 사탄의 생각이 맞는 기소라면 하나님을 경외할 근거가 더 이상 없는 거잖아요 과연 욥은 그랬을까요?

오늘 본문 20절로 돌아가 봅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욥이 일어났답니다. ‘일어나’ ‘와이야콤’의 원형이 ‘쿰’이거든요 ‘달리다쿰’ ‘소녀야 일어나라’잖아요 그러니까 하루 동안에 기가 막히고 엄청난 날벼락 같은 사건을 연이어 보고 받을 때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여기 ‘일어나’ ‘와이야콤’은 흔들림 없는 마음 자세와 신앙 상태라는 거지요 욥이 일어났고 그리고 겉옷을 찢었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입는 ‘옷’이 ‘케토네트’인 반면에 상류층 사람들은 그 ‘케토네트’ 위에 ‘메일’이라는 겉옷을 입었거든요 욥은 바로 이 겉옷 ‘메일’을 찢었다는 거지요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는 상징적 표현이잖아요 이어서 머리털을 밀었다는 건데 당시 근동의 머리털이 주는 의미가 뭐냐 하면 건강과 힘 명예의 상징이었었다는 거지요 우리나라 옛날 선비들이 머리털을 자르지 않고 길게 기른 머리털을 하나로 모아서 상투를 틀었었잖아요. 조선 말기에 신문화가 들어오면서 머리털을 자르는 문제로 많은 갈등을 겪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머리털을 민 욥의 행동에서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였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욥은 엎드렸고 예배를 드렸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일어나는 ‘와이야콤’은 엎드려 예배하기 위해 필요한 처음 행동이었다는 거지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욥은 한 없이 무능함과 연약함 그리고 슬픔과 고통의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오히려 예배자가 되어 엎드려 있는 겁니다. 여기 ‘예배하며’ ‘와이쉬타후’는 절하다 경배하다는 의미거든요
그러면서 21절에 뭐라고 말합니까?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여기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다’는 말은 내가 벌거벗은 채로 어머니의 배로부터 나왔다는 의미지요 그리고 역시 벗은 채로 거기로 돌아 갈 것이라는 겁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무소유로 나온 것처럼 어머니 뱃속의 무소유의 세계로 돌아갈 거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주신 이도 여호와시고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라는 진정한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고백하고 있음을 보는 거지요
사탄은 욥이 많은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그래서 정직하고 그래서 온전하고 그래서 악을 짓지 않는 것이라고 했었잖아요. 그러나 욥은 사단의 생각과는 달리 주인이신 하나님이 다 찾아 가셔서 나는 이젠 남은 것이라고는 없지만 뭡니까?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세요 하더라는 거 아닙니까?
모든 물질과 자녀들까지 주신 분이 하나님 여호와이셨다는 거고 주인이 누구?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욥의 생각이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소유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도로 가져가셨다 뭡니까?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원망의 대상자가 아니고 찬양의 대상자라는 겁니다. 22절에 뭐라 말씀하나요?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여기 ‘범죄하지 아니하고’ ‘범죄’가 ‘하타’인데 ‘않았다’는 부정사 ‘로’가 붙어서 ‘로하타’ ‘절대로 범죄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요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지 않았다는 거지요 ‘나탄’ ‘원망하다’인데 강한 부정사 ‘로’가 붙어서 ‘로 나탄’ ‘절대로 원망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요 있어서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감사지요 최악의 고난의 때 최상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욥을 보면서 우리 시대에 코로나19로 인해 직장과 가정 사업과 장사가 위태해 지는 가운데서도 욥처럼 범죄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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