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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5~8절 “성령을 쫓아 사는 삶(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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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5-18 13:14    조회 742    댓글 0  
 
롬8:5~8절 “성령을 쫓아 사는 삶(2)”  2022.5.18.
지난 주 마지막으로 생각한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의 요구가 뭐냐는 거였거든요 그것은 율법대로 살라는 순종이었다는 거잖아요. 그러나 예수 믿고 성령의 도우심이 없었을 때는 이 율법의 요구를 절대로 이룰 수 없었지만 예수 믿고 성령 받은 우리는 말씀대로 자발적으로 살려는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에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졌다고 선언하고 있는 겁니다.
5절을 보실까요.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그런데 원문에는 헬라어 ‘가르’가 있어서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한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예수 믿고 성령의 인도 따라 살게 되면 자연 율법의 요구인 말씀의 순종을 이루게 되는데 ‘왜냐하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여기 ‘육신’은 헬라어 ‘사륵스’인데 죄의 본성을 따르고 타락한 본성을 따르는 것을 ‘육신’이라고 말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리가 없다는 거고 ‘영’ 헬라어 ‘프뉴마’는 사람의 영이 아닌 하나님의 영 ‘성령’이시니 성령을 따르게 되니 율법의 요구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거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모든 말씀을 백퍼센트 다 순종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뭡니까? 율법의 요구에 대해 순종하려는 방향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육신 사륵스를 따를 때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아예 관심도 없이 살았으니까 완전 방향이 바뀐 거잖아요 그래서 율법의 요구를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순종하도록 이끌어 가시니까 어떤 일이 우리에게 일어납니까? 성화지요 하나님이 바라시는 원하시는 거룩에로 나가게 된다는 겁니다.
이처럼 육신이 추구하는 것과 성령이 추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 결과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갈5:19~21절에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율법의 요구대로 순종하지 않고 사니까 성화하고는 거리가 멀지요 그러나 성령을 따라 행할 때는 22절과 23절에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것들은 뭡니까? 성화된 모습들이잖아요.
그래서 ‘생각하나니’ 헬라어 ‘프로누신’은 ‘생각으로만이 아니라 적극적인 의지와 감정 그리고 이성으로 행위까지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이 생각에 대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갈5: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러므로 어떻게 살랍니까? 그 다음 절 25절에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그런데 어떤 모습도 보일 수 있답니까? 갈5:26절에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왜 육신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들이니까 헛된 영광 구하는 삶에 결국은 후회만 밀려옵니다. 서로 노엽게 할 때 지옥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 또 후회합니다. 서로 투기할 때도 마귀가 좋아하는 줄 모르고 하다가 상처만 입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6절에서 뭐랍니까?

6절을 보자구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여기도 원문에서는 헬라어 ‘가르’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한다는 거지요 육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면 사망이라는 겁니다 여기 ‘사망’ 헬라어 ‘다나토스’는 하나님과의 단절과 분리를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연한 것을 말한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이 막연한 상태에 대해 엡2:1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하니까 지옥이라는 거고 후회가 되는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겁니다. 반면에 성령의 생각대로 살면 생명이고 평안이고 잘했다는 만족이고 감사고 천국이고 행복이라는 겁니다. 여기 ‘생명’ 헬라어 ‘조에’는 하나님과 형통한 관계인데 요1: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지요 이 생명은 어둠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 빛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 생명을 소유해야 하는 거잖아요 생명을 주시려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가 없는 건데 빛으로 드러난 예수님을 믿어 생명을 소유하게 되면 하나님과 형통한 관계를 맺게 되는 생명으로 가득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겁니다. 왜 이 생명이 예수 안에 있으니까 요14: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예수 믿어 그 예수를 중심에 모시면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데 이 생명은 하나님과 형통한 관계를 갖게 되는 거고 여기에 뭐가 뒤따라옵니까? 평안을 누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 요14: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러나 반대로 요3:19절에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들은 육신의 생각대로 살 수밖에 없는 거지요 요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 믿으면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은 뭘 의미합니까? 육신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거지요 영의 생각을 가진 자들이요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되었음을 기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절을 보자구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이 세상은 예수 믿고 영의 생각을 따라 사는 사람과 타락한 본성이요 죄의 본성을 따라 사는 육신의 생각대로 사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데요 왜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사니까 절대로 굴복하려 하지 않으니까 여기 굴복하지 않는다는 말은 주인으로 삼지 않는다는 거거든요 왜 굴복할 수 없답니까? 성령으로 살아야만 말씀에 순종하는데 육신으로만 살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여기 ‘원수’ 헬라어 ‘에크드라’는 ‘적극적인 적의’를 의미하거든요 이번에 코로나19로 믿지 않는 자들이 교회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적극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잖아요. 인간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할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간 자신을 주인삼은 삶을 적극적 행동으로 나타낸다는 겁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죄로 말미암아 생명을 잃고 사망에 앉은 인간들을 위해서 생명을 가진 독생자로 오셨는데 그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거절하니까 결국 인간은 사망에서부터 벗어나올 수가 없는 것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우리를 예수 믿게 하고 성령이 임하여 성령 따라 살게 하신 목적이 뭡니까? 히8:10절에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 순종자로 삼기 위해서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8절에 뭐랍니까?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당연하지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을 주인삼기보다는 자신을 주인삼은 삶을 살아가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보다는 매우 슬프게 하는 거지요 그래서 갈5:17절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일을 막아서는 일을 육신에 있는 자들은 아무 거리낌이 없이 하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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