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    |    |  
회원 로그인
회원 가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가입으로 서비스 약관개인정보 보호 정책 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수요예배 설교원고

bo_title_img1.png

“와 보라” 요한복음 1:35~46  
카카오톡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주소복사
   김진수   작성일 21-11-16 16:17    조회 1,116    댓글 0  
 
“와 보라” 요한복음 1:35~46    2021.11.16
참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을 호령하다가 간 사람들도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네처럼 평범하게 살다가 가지요 예수님의 구원의 길을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와서 사람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여 주모케 한 후 자신의 사명을 감당한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이지요 세례요한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까지 예수님을 따르게 해 놓고 역사 속으로 깨끗하게 사라지잖아요.
세례요한에 대해 살펴볼까요?
세례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중에 가장 큰 자라는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지요. 그러나 세례요한의 삶은 가장 큰 자라는 소개하고는 달리 광야에서 사는 그의 삶은 비참했다는 겁니다. 부모가 나이가 많아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부모와 함께 할 수 없었고 세례요한은 광야로 나아가서 거기서 약대털옷을 입고 석청을 먹고 메뚜기를 먹으면서 자급자족하면서 살았다는 거지요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 이후 4백 년 만에 세례요한이 선지자로 광야에서 등장했으니까 더군다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 되어 받는 설움과 핍박 그리고 온갖 착취로 마음이 상하고 힘들어하던 때였으니까 이스라엘자손들이 세례요한을 보기 위해서 광야로 모여 들었다는 겁니다.
회개의 세례를 외치는 선지자에게 요단강으로 세례를 받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를 따랐다는 겁니다. 이런 때 예수님이 등장하셨잖아요. 예수님의 등장은 놀랄 정도였습니다. 나병환자가 고침 받지요 중풍병자가 일어나지요 각색 병든 자들이 와서 모두 회복되니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던 데서 모두 예수님에게로 가버립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초라해짐에 대해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자신은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제자들마저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것을 씁쓸하게 바라봐야만 했던 거라는 거지요
여자가 난 자 중 세례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는 예수님의 칭찬은 세상적인 기준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시각적 기준이었다는 거거든요 사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위해 철저히 망한 사람이 아닙니까? 예수 위해 나를 포기하고 없어진 사람이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위대한 사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시각도 바뀌어야 되겠지요. 우린 세상적 기준으로 사람을 보잖아요. 뭘 갖췄고 뭘 소유했고 이런 것에 기준을 삼는다는 건데 예수님이 보는 안목은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 한 주만 보이도다’ 이런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인 것을 항상 기억하고 이를 기준으로 여기며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례요한은 인간적으로 보면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고 따라서 가정도 없었지요 더군다나 바른 소리하다가 옥에서 목 잘려 죽었으니까 지지리도 복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세례요한에게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자는 없다고 하신 거지요 대다수의 성도들은 빌2:21절에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그러면서 큰 자를 꿈꿀 때가 많다는 거잖아요. 예수 믿고 많은 복을 받았다면서 정작 헌신적이지 않는 우리는 세례요한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면 은혜가 될 것을 믿습니다.

•38절을 보시지요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여기 ‘보시고’ 헬라어 ‘데아사메노스’는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다’라는 의미지만 더 깊은 의미는 ‘초자연적 지각으로 보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뭘 원하는지를 정확히 아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 여기 ‘구하느냐’ 헬라어 ‘제테이테’는 ‘찾는다’는 의미보다는 ‘목표로 삼다’ 또는 ‘원하다’거든요 그렇다면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세례요한을 따랐던 이유와 이제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유가 뭔지를 예수님은 저들의 소원을 간파했다는 겁니다. 메시아지요 그래서 로마의 속국에서 그리고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바로 그 메시야를 찾고 있었음을 아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신 거라는 거지요
여기서 우리가 뭘 깨닫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우리의 구주에 대해 어느 정도로 소원하고 목적으로 삼고 사는지 돌아본다는 거지요
•39절을 보시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확인해야 한다는 거지요 아직도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일이 제일로 급한 일이요 제일로 중요한 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례요한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40절을 보시지요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예수님을 만난 안드레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믿게 되고 그가 한 행동이 무엇이었나요? 제일 먼저 그의 형제 시몬이 떠올랐고 어떻게 했습니까? 41~42절을 보시지요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여기서 우리가 안드레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들이 무엇일까요? 안드레는 제일 어려운 사람이지요 자신의 형 시몬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순서로는 안드레가 먼저잖아요 그런데 안드레가 인도한 그의 형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더라는 거잖아요 예수님의 핵심그룹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었잖아요 베드로는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예수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는 겁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라고 항상 형에 뒤쳐져 있기도 하지요 더군다나 베드로는 성령 받고 한번 설교에 5천 명을 그리스도예수 앞으로 돌아오게 하였지만 안드레는 어떤 사람입니까? 5천 명을 주 앞에 돌아오게는 못했지만 5천 명을 주님께로 인도한 베드로를 전도한 사람이라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다 베드로처럼 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 앞에 가면 얼마나 사람들 눈에 띄게 살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지요 안드레처럼 내가 전도한 사람이 교회에서 큰 역할을 한다면 하나님 앞에 그 상이 크다는 걸 기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립도 예수님을 만난 후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아를 만났다는 감격에 겨워  그는 가장 가까운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님을 전했다는 거지요
•45절을 보시지요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빌립이 예수를 믿고 나서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한 선지자가 기록한 메시야를 만났다고 전하지요 46절을 볼까요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나다나엘의 다른 이름이 바돌로매입니다. 나사렛에서는 메시야가 날 수 없었기 때문인데 빌립은 말이 막히자 와 보라”고 했다는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전도는 성경을 완벽하게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빌립처럼 잘 몰라도 전도는 해야 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다나엘은 빌립을 따라 왔다는 거 아닙니까? 전도는 지식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을 잘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경지식이 없어서 또는 말을 잘 못해서 전도하지 못하지 않고 무조건 데려와 말씀을 듣도록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심으로 내가 전도한 이들이 베도로와 바돌로매같은 신실한 일꾼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은혜로운 결과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일오전 설교동영상
공지사항
. .
.
교회앨범
비전센터 앞에 주차장이 이쁘게 완성되… 
동영상앨범
22년 낙도선교회
- -
-
선유중앙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회원가입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전체 최근게시글
  • 선유중앙교회 SNS를 방문해 보세요
    교회명 : 선유중앙교회 | 담임목사 : 김진수 | 주소 : 10811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독서울 5길 18-30
    교회전화 : 031-954-1080, 953-5977 | Fax : 031-954 1040 | 목사관 : 031-952-2097 | 이메일 주소 : yegrim@hanmail.net
    Copyright ©1955~2024   sunyou.or.kr. All Rights Reserved.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031-954-1080
    선유중앙교회 전화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