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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31:19~24절 “쌓아두신 은혜 베푸신 은혜가 내게 크게 다가오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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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04-23 22:25    조회 6,937    댓글 0  
 
시31:19~24절  “쌓아두신 은혜 베푸신 은혜가 내게 크게 다가오게 해주세요”    2020.4.26.
시편 31편은 다윗의 시라고 표제에서 알려주지요 그리고 인도자 ‘라므낫체아흐’ 우리가 먼저 쓰던 개역성경에선 ‘영장’ 뭡니까? 뛰어난 지휘자의 인도를 따라 부른 노래라고 덧 붙여 설명합니다. 오늘은 19절로 24절을 중심으로 이 시에 담긴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9절을 볼까요.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여기 ‘주를 두려워하는 자’랍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특성 중 하나가 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그랬잖아요. 그러나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달라진 것 중 하나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되었다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이 들으시고 보시고 어디든 계시는 걸 믿으니까 날 새로 지으셨고 마음을 아시고 머리털까지 세시고 나에 대해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잖아요. 그러니 말을 조심합니다. 마음을 하나님 향하여 올바르게 갖습니다. 믿음으로 행동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이 보실 때 주를 두려워하는 자는 어떤 자일까요? 욥2:3절에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온전하고 정직하고 악을 미워하더라는 거지요 실제로 욥의 자녀들이 생일잔치를 하고 났을 때 욥이 한 행동을 보세요. 욥1:5절에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의 이런 모습을 하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 자로 보셨다는 거지요 이번엔 다윗이 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어떤 이라고 말합니까? ‘주께 피하는 자’라지요 여기 ‘주께 피하다’ ‘라호씸’은 ‘하나님을 신뢰하다’는 의미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특별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뭐랍니까?
‘쌓아두신 은혜’가 크다는 거지요 여기 ‘쌓아두다’ ‘차파느타’는 ‘저장하다’ 또는 ‘예비하다’라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주께 피하는 자들을 위해 저장되었던 은혜를 필요할 때 베푸시는 그 은혜가 크다는 겁니다. 이 큰 은혜를 인생 앞에서 베푸시더라는 거 아닙니까? 인생이라면 11절을 보세요.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인생으로 인해 욕을 당했고 가까운 이들에게는 심하리만큼 욕을 당했고 기피하더라는 겁니다. 13절도 볼까요.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사람들의 비방은 물론 생명까지 빼앗으려했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사람들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주를 두려워했다는 거 아닙니까? 이럴 때마다 뭡니까?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미리미리 저장하는 것이 되더라는 거지요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인생 앞에서 저들의 코가 납작해지도록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다윗은 실제로 어떤 큰 은혜를 받았을까요? 20절을 보세요.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사람의 꾀가 크게만 느껴질 때가 있고 사람의 말이 무서울 때가 있어 심장이 떨릴 때가 있잖아요. 이때 일일이 대항하기도 하고 속도 상해 잠도 못자고 마음은 울분에 차고 생각만하면 치가 떨리기도 합니다. 이럴 때 다윗은 하나님께 피했다는 거고 그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뭐예요? 인간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벗어나기 힘든 인간의 모함과 공격이라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당신께 피하는 이들을 능히 벗어나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1절을 볼까요.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여기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예흐와 빠루크’거든요 ‘빠루크’는 ‘무릎을 꿇다’는 의미인데 찬송하라는 의미로 번역이 된 것은 무릎 꿇음으로 뭡니까? 경외함과 진실함으로 복되고 크신 구원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거거든요 무릎을 꿇어 찬송할 이유가 뭐랍니까?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 ‘견고한 성’ ‘뻬이르마초르’는 뭘 말할까요? 아무리 적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당해도 우리 하나님은 뭡니까? 끄떡없는 난공불락의 성이란 거지요 그래서 마틴루터가 작사한 찬송 제목이 ‘내 주는 강한 성’이잖아요 다윗도 시편18:2절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라고  ‘요새와 산성’이라면 ‘견고한 성’을 말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피하는 두려워하는 신앙으로 살 때 견고한 성에 있는 것 같은 보호와 사랑 즉 ‘내게 놀라운 사랑을 보이셨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발견되는 교훈이 뭡니까? 분명 사람들이 공격하는 것은 인간 다윗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공격하고 있었다는 거고 다윗은 견고한 성과 같은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경험하고 있었던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 다윗에게서 우리와 매우 비슷한 인간적 연약함을 발견하게 된다는 거지요 그게 뭡니까? 22절을 보시지요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여기 ‘놀라서’ ‘베호프지’는 ‘공포를 느끼다’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인생들의 말장난과 자신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공격이 얼마나 악랄하고 컸던지 그 모습에 큰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공포 그 자체였다는 겁니다. 이런 무섭고 두려운 상황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눈앞에서 내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끊어졌다고 말했다는 거거든요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소망을 포기했다는 거잖아요
14절 보세요.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주를 의지하고 여전히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라고 했던 사람이 다윗이었는데 하나님의 눈앞에서 더 이상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니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네 모습하고 같은 모습이니까요 불신과 의심의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네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을 놀랍게도 그 위대한 신앙의 사람 다윗에게서 본다는 겁니다. 여기서 발견되는 중요한 교훈이 뭡니까? 정말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안 된다는 거지요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총은 사람의 의로움에 있지 않다는 거 아닙니까? 주여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게 해 주세요 그렇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것만이 필요하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됩니다. 다윗은 이런 연약함 중에 있었지만 곧 다시금 기도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뭡니까? 불신과 의심의 안개에 마음을 빼앗겼음에도 하나님은 그런 다윗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다는 거거든요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23절을 볼까요.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기 또 나오네요. ‘하씨다이우’ ‘성도들아’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아’라는 거지요 다윗은 너무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아서 인간적인 생각이 앞서서 불신앙과 의심의 말을 내 뱉기도 했지만 뭡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기도하는 자신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셨다는 걸 말하면서 ‘성도들아’ ‘하씨다이우’를 부르고 있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주의 성도들 ‘하씨다이우’ 모두에게 요청하는 것이 뭡니까?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거지요. 이는 모세오경에서 줄곧 다윗이 읽고 지키는 말씀이었다는 거고 ‘하씨다이우’ 성도들에게 신6: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전한 거지요 이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하씨다이우’들에게 가장 첫째 되는 계명으로 정리 시키신 거잖아요
그런데 왜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이 대신 싸우시기 때문이란 거거든요 수23:10~11절에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다윗도 자신의 의심과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르짖음이 응답이 되어 인간 앞에서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자신이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하씨다이우’ 성도들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지요 첫째가 진실한 자는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거고 둘째가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겐 엄중히 갚으신다는 겁니다. 여기 ‘진실한 자’ ‘에무님’은 ‘충성스럽다’는 의미거든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와 하나님과 성도, 주종의 관계에서도 충성스러운 거지요 하나님은 이 충성하는 자를 ‘보호하신다’ ‘노체르’는 ‘위험으로부터 지키다’니까 충성스러운 자를 하나님은 위험으로부터 계속 지키신다는 거지요 둘째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말씀시지요 하나님께 대해 또 그분의 말씀에 대해 불충한 자가 곧 교만한 자이고 이 교만한 자에 대해 엄중하게 하나님이 갚으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할 것은 뭘까요? 하나님이 없는 부정한 자의 형통과 악인이 잘 되는 걸 보면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으로 갚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24절에 뭐래요?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하지요 그러므로 악이 승리하는 것 같고 악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걸 본다면 여호와를 바라는 이들은 강하고 담대 하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저장하는 기회가 되고 가장 어려울 때 인생 앞에서 하나님은 큰 은혜를 베푸신다는 걸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저축해 가시는 삶을 사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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