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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7:1~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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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03-12 08:25    조회 7,263    댓글 0  
 
시27:1~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2020.3.15.
다윗의 시랍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런 말을 하네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왔고 군대가 나를 치러 왔다고 이와 같은 인생의 위기 때 날 찾으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는다는 거지요

1절을 볼까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다윗의 생명을 찾는 이들이 다윗의 살을 먹으려하고 동원된 군대는 다윗을 치려한다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 다윗의 말이 ‘여호와는 빛이라는 거고 구원이 되시기 때문에 누구도 두렵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본 시편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찾고 있음을 봅니다. 모세를 찾아오셔서 내 이름은 여호와라 소개하셨던 바로 그 이름 ‘여호와’가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온전히 구원해 내셨다는 거거든요 뭡니까? 그렇다면 지금 인생의 위기에서 뭘 기억하고 있는 겁니까? 바로 그때처럼 자신도 ‘여호와’를 찾으므로 그가 구원하시리라는 믿음의 표현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여호와가 나의 빛이라고 말하잖아요.
왜 여호와가 빛인가요?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어둡다는 거고 어둠이 빛에 의해 물러가듯이 지금의 이 어둠의 상황이 빛이신 여호와로 인해 물러 갈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또 다윗은 여호와가 구원이라고 말하네요. 다윗의 지금 처지가 매우 절망적이고 위험한 상황이라는 거지요 다윗이 그 동안 겪어온 전쟁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러니 군대의 힘도 알 거고 무기의 힘도 알거고 전략적 지혜 또한 전쟁에서 참으로 소중한 자원이라는 것도 알지만 실제로 구원은 이런 것들로 오는 것이 아니라 뭡니까? 여호와께로 온다는 믿음의 판단이란 거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뭡니까? 여호와가 빛을 주시고 구원을 주신다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가 빛이요 여호와가 구원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게 계시니 ‘밈미 이라’ ‘누구를 내가 두려워하겠느냐’ ‘밈미 에프하드’ ‘누굴 내가 무서워하겠느냐’는 겁니다. 2절을 볼까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악인들 대적들 원수들로 표현되는 이들이 다윗을 향해서 오는 목적이 끔찍하지요 다윗의 살을 먹으려 한다는 겁니다. 이 말은 다윗의 파멸을 노리고 있다는 거잖아요 지금 이 상황을 예전 목동으로 있었을 때 양을 찢기 위해 다가서는 맹수에 비교하고 있는 거지요 그랬지만 오히려 원수들이 넘어졌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뭡니까? 성도에게 위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되는 기회가 된다는 거잖아요 이번 코로나19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3절에선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여기 ‘군대’ ‘마하네’는 ‘군대의 진영’ ‘진을 친 자들’이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니까 이미 전쟁을 치루기 위해 다 준비된 상태라는 거지요 ‘폭풍전야’라는 말이 있듯이 이때가 가장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시기지만 그럼에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 다윗의 고백이라는 겁니다. 그것도 영원히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거지요 왜 이런 고백이 가능할까요? 과거에 비춰 봤을 때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가 틀림없었다는 거거든요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한다’ 뭡니까? 폭풍전야였던 전쟁의 기운이 실제 전쟁으로 발전이 되었다는 거지요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놀라운 것은 다윗의 마음입니다. 전쟁 직전 폭풍전야와 같아 누구나 가장 두려울 때 두렵지 않다고 하더니 막상 전쟁이 터졌을 때 태연하다는 거 아닙니까? 여기 ‘태연하다’ 히브리어 ‘보테아흐’는 ‘안전함을 믿다’거든요 오늘의 코로나19와 이북의 미사일발사 그리고 정치적 불안 속에서도 엄마의 품속에 젖을 먹는 어린아이처럼 태연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절을 볼까요.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다보니까 우리가 바라는 한 가지 일이 뭡니까? 그 동안 마음 놓고 아무 제약받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그렇게도 소중한 걸 몰랐었는데 이젠 제대로 예배드리기를 사모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다윗이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은 뭐랍니까? 여호와의 집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보기 원한다는 거잖아요 여기 ‘아름다움’ 히브리어 ‘노암’은 ‘은총’이라는 의미니까 주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보기 원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여호와를 사모한다는 거지요 다윗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고 태연하기까지 할 수 있었던 원천이 바로 주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데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지요 이런 다윗을 하나님이 행13:22절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거지요 그래서 신6:4~5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신 겁니다 우리 삶의 우선순위 1순위도 하나님 사랑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사랑하고 가까이 하는 이유가 5절에서 뭐랍니까?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뭡니까? 절대적 보호자가 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보호를 삼중표현으로 말씀하지요 첫째가 환난 날에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둘째가 은밀한 장막에 숨기시고 셋째가 높은 바위 위에 두심으로 지키신다는 겁니다. 초막이라면 그 옛날 광야에서 텐트생활 하던 것을 기억하면서 이스라엘자손들이 광야로 나가 초막을 짓고 초막절을 지키면서 하나님이 보호하셨던 때를 기억하으니 초막은 곧 하나님의 보호라는 거지요 그리고 장막이라면 성막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 은밀한 곳은 지성소라는 거거든요 여기는 대제사장만 일 년 한 차례 들어갈 수 있는 정말 은밀하고 거룩한 곳이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니까 하나님의 보호가 있을 건 당연한 거지요 그 다음 바위 히브리어 ‘추르’는 ‘암벽’ ‘반석’이라는 의미니까 ‘요새’라는 겁니다. 그래요 요새처럼 안전한 곳이 바로 반석 위에 두셨다는 거고 높은 곳에 세우심은 승리를 의미하는 거지요 그래서 다윗은 그토록 하나님 사랑을 자신의 삶에 최우선 순위로 두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 결과가 뭐라는 건지 다음 절에서 설명하잖아요.

6절을 볼까요.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나를 둘러싼 내 원수’라는 말이 다윗이 어느 정도로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는지를 알려주지요 겹겹이 포위 된 상태라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키시고 감추시고 세우시니까 다윗의 머리가 포위하고 있었던 그들이 다 보도록 들려졌다는 거지요 지키심과 건지심만이 아니라 뭡니까? 다윗을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말씀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 구원 역사로 인하여 하나님의 성전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며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겠다는 거지요 여기 ‘즐거운’ 히브리어 ‘테루아’는 ‘기쁨의 큰 소리’ 또는 ‘나팔 소리’거든요 그리고 ‘드리겠고’는 히브리어 ‘웨에쯔뻬하’ ‘동물을 죽이다’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을 인하여 하나님께 짐승을 잡아 희생 제사를 드리면서 마치 축제와 같은 큰 소리로서 즐거이 노래하겠다는 겁니다. 어디서? 하나님의 성전이지요.
그러면서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기 ‘찬송하리로다’ ‘와아잠메라’는 ‘손가락을 튕기다’는 ‘자마라’란 단어에서 나왔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찬송하리로다’는 ‘현악기를 사용해서 노래하겠다’는 의미로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어서 악기를 동원하여 큰 소리로 축제처럼 즐겁게 예배하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주지요 오늘 내가 드리는 예배가 구원의 감격과 제물에 대한 기쁨과 큰 소리의 찬양이 되기를 원합니다.
7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구원을 통한 찬양과 축제가 있기 전에 군대가 진을 치고 실제로 전쟁의 상황으로 벌어지는 무섭고 두려운 상황에서 다윗이 한 일이 뭔지를 말씀하지요 하나님의 긍휼과 도움을 간절하게 소리 내어 부르짖었답니다. 그 다음 8절이지요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여기서 다윗이 소리 내어 부르짖는 기도가 무엇에 근거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합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다윗은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찾겠다고 한 거지요 여기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건성 건성이 아니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는 전 인격으로 찾는 걸 말합니다. 그 다음 9절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하나님 숨으신 것처럼 버리신 것처럼 떠나신 것처럼 느껴져 신앙이 흔들릴 때 과거에 구원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는 다윗을 봅니다. 10절에선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그렇게 흔치 않잖아요 그러나 다윗에게 이런 아픔이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시라는 겁니다. 뭡니까? 사람은 부모라도 변할 수 있다는 거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당신의 백성들을 변함없이 받아들이신다는 거지요 더군다나 예수 믿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신 거잖아요 마7: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1절이지요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뭡니까? 어려움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어려울 때일수록 주님의 방식대로 살겠다는 거잖아요 12절을 보시지요.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평탄한 길도 내 생명도 그리고 나를 치려는 자에게서도 지키실 이는 내가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라는 거지요
그리고 13절에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뭡니까? 고통스러운 환경과 부딪히는 어려움 속에서 낙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바라보며 소망에 가득한 다윗을 본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마지막 14절에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모세에게서 지도력이 여호수아에게로 넘어갈 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당부하신 말씀이지요 ‘강하고 담대하라’ 사람바라보지 말고 환경바라보지 말고 세상풍파에 흔들리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면서 ‘여호와를 기다리라’는 겁니다. 흔들림이 없이 살아가는 비결이 어디에 있다는 겁니까? 여호와를 기다리는 삶이라는 거지요 지금 보이지 않는 전염병 코로나19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잖아요. 이럴 때 보이지 않는 죄의 역사를 경계하여 신령한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고 예수그리스도와는 거리두기가 아니라 내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살며 여호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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