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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5:1~7 “가장 어려울 때 삶의 지침은 주의 진리가 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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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02-28 16:27    조회 6,444    댓글 0  
 
시25:1~7    “가장 어려울 때 삶의 지침은 주의 진리가 되게 해 주세요”    2020.3.1.
시편25편을 다윗의 시라고 밝히고 있음을 봅니다. 다윗은 본 시편에서 원수들이 자신을 힘들게 어렵게 할수록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삶의 기준을 정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와 은혜를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거지요

1절을 볼까요.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다윗은 본 시편의 시작을 ‘예흐와’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로 시작하고 있지요 ‘여호와’의 의미는‘스스로 계신 자’이지요 이스라엘백성이라면 누구라도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주는 의미가 뭔지를 알잖아요. ‘언약에 근거해서 이스라엘백성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이끌어 가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라는 거거든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을 찾아오실 때 자신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고 저들 조상 한 사람 한 사람과 인격적으로 만나시고 언약관계를 맺으셨음을 말씀하셨다는 거잖아요
예를 들면 그 옛날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자그마치 사백년 동안 노예로 고통당할 때 이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저들을 구원하시려고 지도자로 삼을 양 치는 모세를 찾아오셔서 자신을 소개하셨지요. 출3:14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뭡니까? ‘여호와’라고 소개 하신 겁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언약의 하나님이신 걸 모세에게 바로 그 다음 절 15절에 말씀하시지요.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그렇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바로 나와 언약을 맺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이고 이 후손들과도 계속되는 언약의 효력을 말씀하시면서 대대로 또 영원히 기억할 이름이 ‘여호와’라는 거지요
바로 다윗은 그 언약의 하나님 ‘예흐와’를 찾으면서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본다’는 겁니다. ‘우러러 보는’ 주체가 뭐랍니까? ‘나의 영혼’ 히브리어 ‘나프쉬’랍니다. ‘나프쉬’의 원형이 ‘네페쉬’인데 ‘영혼, 생명, 호흡, 생기, 존재’라는 의미거든요 그렇다면 뭡니까? 다윗은 자신의 존재 전부로 주를 우러러본다는 거지요 여기 ‘우러러 본다’ 히브리어 ‘엣사’는 ‘들어 올리다’라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다윗은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 올리듯이 자신의 존재 전부를 들어 올려 주를 향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어렵게 하는 환난도 승리에 도취한 원수들의 움직임을 보기보다는 흔들림 없이 구원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하나님께만 집중한다는 거지요 왜요? 성도의 소망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인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2절을 보시지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뭡니까 손을 드는 것처럼 흔들림이 없이 자신의 존재 전부를 주를 바라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2절에서 알게 하잖아요. 뭡니까?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했다는’거지요
여기 ‘의지했다’ 히브리어 ‘바타흐티’는 ‘믿었다, 확신했다, 기대했다’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바타흐티’는 완료형 동사라는 거지요 과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은혜를 기억하면서 ‘의지했다’고 표현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오늘의 상황에서도 예전처럼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거지요
다윗은 죽은 우상을 섬김으로 수치를 당하는 이방인들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었거든요  이사야 선지자는 우상을 따르는 백성들을 보면서 사42:17절에 “조각한 우상을 의지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고 했고 하박국선지자도 새긴 우상의 거짓됨에 대해 합2:18절에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그러나 다윗이 믿는 하나님은 말 못하는 우상이 아니시라는 거잖아요. 다윗이 믿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사45:7절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창조주시라는 거고 주권자도 되신다는 거고 생사화복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다윗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뛰어넘어 뭡니까? 절대로 원수들이 승리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거지요 그래서 3절에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오히려 하나님 없는 속이는 자들인 원수들이 반대로 수치를 당한다는 거지요
엘리야선지자와 바알 선지자들과의 한판 승부를 아실 겁니다. 그때 한판 승부가 뭐냐 하면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신으로 하나님이 참신인가 바알이 참신인가를 가리기로 한 거지요 이 한판 승부에서 저들 바알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점심까지 ‘바알이시여’를 외쳤지만 불이 내리지 않았고 불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늘로부터 엘리야의 제단에 내려 제물을 태우게 되므로 참신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드러나면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팔백오십 명을 시냇가로 데려가 모두 죽임으로 우상을 섬기던 자들이 수치를 당하고 말지요 그렇습니다. 시121:2절이지요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4절을 볼까요.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1절로 3절까지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양손을 높이 들 듯이 다윗은 자신의 존재 전부를 하나님을 향하겠다는 말씀과 더불어 이런 자신이 원수들에게 수치를 당하거나 원수들이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일이 없게 해 주시고 결국 원수들은 거짓된 것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노래했었잖아요. 그랬던 다윗이 결코 문제를 외부로만 돌리지 않는다는 걸 4절에서 보여주지요 ‘예흐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여주세요.’랍니다. 여기 ‘주의 도’ 히브리어 ‘떼라케카’는 ‘길’ ‘여정’ ‘행동양식’이라는 의미거든요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여호와의 섭리방식이라는 거지요 더군다나 ‘보이시고’는 단순히 보는 정도가 아니라 체험 속에 아는 걸 말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윗의 확신이 어디서 온다는 겁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한 삶을 살아간 데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라고 말합니다. 뭡니까? ‘주의 도를 내게 보이소서’ 같은 의미를 다른 말로 강조하고 있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세상에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고 하나님의 뜻을 찾기에 열심을 내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절을 보시지요.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여기 ‘주의 진리’ 역시 주의 도나 주의 길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속이는 것과는 완전 반대되는 개념이잖아요
뭡니까? 주의 길과 주의 도 주의 진리로 살기 때문에 수치를 당하지 않는 이유가 된다는 거고 반대로 속임과 거짓은 악인으로 하여금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윗은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해주세요’라고 노래하고 있는 거지요 ‘지도하시고’ 히브리어 ‘하드리케니’는 ‘밟아 가다 또는 걷게 하다’니까 나로 하여금 주의 진리를 밟아나가게 진리의 길을 걷게 해 주세요 그런 의미가 되는 거지요 마치 걸음마를 막 시작한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엄마처럼 하나님의 진리로 행할 수 있게 자신의 걸음을 지도해주시라는 거거든요
그리고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라고 말하지요 그런데 원문에선 ‘키’ 이유접속사 ‘왜냐하면’이 있다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진리로 행할 수 있게 내 걸음을 지도해주세요 왜냐하면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까 그런 말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자신을 주의 진리로 주의 도로 주의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거지요 그것이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린다.’는 거 아닙니까? 이렇듯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 하겠다는 당시 다윗의 형편은 좋은 상황이 아니었을 거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저들이 승리했다고 노래 부르는 일이 없기를 구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상태와 환경이 원수들이 승리의 개가를 부를 것 같은 상황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아주 힘들다는 거고 그런 가운데 있지만 다윗은 뭡니까? 주의 진리로 주의 길로 주의 도로 걸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참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존재 전부를 올려드리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모습이 신앙인의 모습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앙인의 참 모습을 본다는 거지요
우리도 어려움이 클수록 종일 주를 기다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6~7절을 볼까요.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다윗은 4절과 5절에서 갓난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음을 지도받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주의 진리로 주의 길로 주의 도로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달라고 한 후에 6절과 7절에서는 긍휼과 인자하심에 호소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 ‘주의 긍휼하심’ 히브리어 ‘라하메카’는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다’ 또는 ‘동정하다’는 의미거든요 이 ‘라하메카’는 원래 ‘레함’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는데 ‘레함’은 엄마의 ‘자궁’을 뜻하는 단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아주 유약하기 짝이 없는 태아를 엄마의 자궁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생명이 보호받고 성장되는 것과 같은 것이 뭐냐 긍휼이라는 거거든요 지금 다윗은 엄마의 자궁에서 보호되고 성장되고 있는 애틋한 그런 의미의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인자하심’ ‘헤쎄드’는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거거든요 뭡니까? 긍휼과 인자하심 이 두 가지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다는 걸 말해준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다윗은 ‘기억 하옵소서’라고 말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뭘 기억해 달라는 겁니까?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라는 거지요 주님께만 있는 긍휼과 인자를 기억하시고 자신의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시지 말라 달라고 호소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실 때 죄와 허물의 기준에 따라 보시지 말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에 의거해서 날 보시라는 거지요 우리도 그렇지요 우리의 죄와 허물이 하나님 보시는 기준이라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어요. 당신의 긍휼과 사랑이 우리를 보는 기준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거 아닙니까? 시145:8~9절에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우리 역시도 주의 긍휼과 인자하심에 언제나 호소하는 분들이 되셔서 크신 인자를 경험하고 불쌍히 여기심을 받으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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