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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4:1~10 “우리 마음의 문을 들어 올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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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02-21 11:46    조회 6,423    댓글 0  
 
시24:1~10      “우리 마음의 문을 들어 올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2020.2.23.
여기 시편24편은 이 시의 저자가 바로 다윗이라는 걸 표제에서 가르쳐주고 있음을 봅니다. 다윗 성이라고 부르는 예루살렘은 신정국가의 수도이고 그렇다면 이곳에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뜻하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어야 하나님이 이 백성을 다스린다고 말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언약궤가 가드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있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래서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옮겨오면서 그 감격을 노래한 시가 바로 시편 24편이라는 거지요

1절을 볼까요.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다윗은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이 바로 왕인 나의 것이야 라고 말하지 않고 제대로 바르게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하지요. 또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도 ‘여호와의 것’이랍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자신의 왕위는 물론 자신까지 그리고 모든 세계인과 땅과 세계에 충만한 것의 주인이 왕인 내 것이 아니고 여호와의 것이고 이 모든 걸 하나님 여호와가 다스리신다는 겁니다. 여기 ‘거기 충만한 것’ 히브리어 ‘우멜로아흐’는 ‘넘어질 만큼 가득함’이라는 의미거든요 또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이 다 모두 하나님 소유라는 겁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또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이 있는 곳의 차이점이 뭘까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창조세계 모두를 뜻하는 거고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이 있는 곳은 사람이 거하며 살 수 있는 곳을 말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이 살 수 있도록 돌보시는 존재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라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마땅한데 그렇지 않고 인간은 죄로 인해 이걸 잊고 산다는 거 아닙니까? 언제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로 회복됩니까? 예수 믿고 구원 받음으로 비로소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고 달라진 것이 뭡니까?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거고 세계와 모든 인간까지도 하나님이 바로 주인이심을 인정하게 된 거잖아요
2절을 보시지요.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히브리원문엔 ‘키’라는 이유접속사가 있어서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셨다는 거고 강들 위에 세우셨답니다. 이 시를 노래할 당시 이방인들은 바다나 강을 신적 존재로 섬기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위에 만물이 거할 터를 세우셨다는 거고 그 강들 위에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그 터전을 건설하셨다는 거지요 여기 ‘터를 세우다’ ‘에싸다흐’는 ‘기초를 놓다’ 또는 ‘건물을 세우다’는 의미거든요 이 모든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건축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거처럼 하나님이 마치 건축가처럼 만물을 거할 터를 바다 위에와 사람들이 살터를 강 위에 세우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모든 만물과 세계와 모든 인간의 주인이 여호와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위대하시다는 거고 그러므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해야 마땅하다는 거지요

3절을 볼까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1절과 2절에서 다윗은 찬양 받으실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이야기했잖아요. 이처럼 하나님을 주목하게 했던 다윗이 이번엔 사람에게 우리 시선을 돌리게 하고 있다는 거지요 여기 ‘여호와의 산’이라면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의미하는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곳이요 ‘그의 거룩한 곳’ 역시 같은 장소를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산이요 거룩한 곳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 곳에 설 자가 누구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여기 ‘오를 자’ ‘야알레’거든요 여호와의 산이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정성과 사랑 그리고 경외심까지도 올라가는 걸 뜻하고 싶었다는 거지요 실제로 다윗이 경험한 건 정성 다해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기뻐 받으셨다는 거였거든요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려지는 예배도 정성 다해 힘을 다해 마음 다해 드려지는 예배자로 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된 은혜와 축복이 내리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와 통치하시는 그분 앞에 오를 자, 설 자가 누굴까요?
4절을 볼까요.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여기 ‘손이 깨끗한 자’랍니다. 그렇다면 ‘손’은 뭘 의미할까요? 삶의 모습이고 활동을 말하잖아요. 우리 이런 말을 들으신 적이 있을 겁니다. ‘나 손 씻었어’ 뭡니까? 그 동안의 죄 된 삶을 정리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손이 깨끗하다’는 건 사회적 활동과 인간관계에서 거리낌이 없는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예배하기 위해 나오는 모든 자들에게 바라시는 것이 뭡니까? 깨끗함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오를 자로 설 자로 깨끗하게 하시려고 우리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오신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9:14절이지요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또 하나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전에 오를 수 있고 설 수 있다는 거지요 원문에는 하나의 문장이라는 거고 다시 해석하면 ‘마음의 청결은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는’이라는 겁니다. 여기 ‘뜻’으로 번역되고 있는 히브리어가 바로 ‘나프쉬’라는 거지요 ‘나프쉬’의 원형 ‘네페쉬’는 ‘영혼’ ‘마음’ 또는 ‘생명’이라는 의미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보통 마음과 영혼을 허탄한 것에 두고 있다는 겁니다. ‘허탄한 것’에 대해 3가지를 말씀하는데 먼저 잠23:5절이지요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사람들이 그토록 마음을 주고 마음을 빼앗아 가는 재물이 얼마나 허탄하고 허무한지 한 순간에 독수리처럼 날아가 버리더라는 겁니다.
또 하나 허탄한 건 시97:7절에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허무한 것 또 다른 하나는 사람이 조각한 신상을 섬기는 건데 결말이 뭡니까? 그로 인해 수치를 당한다는 거고 경배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허탄한 것에 대해 렘14:22절에 “이방인의 우상 가운데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는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하니라” 허망하고 허탄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이 뭡니까? 비를 내리게 할 수도 없고 소나기를 내리게 할 수도 없는 우상을 신이라고 섬긴다는 거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비는 물론 소나기도 내리게 하시는데 이 모든 걸 만드셨으니 정말 경배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시라는 거 아닙니까?
또 하나님 앞에 오를 자요 설 자가 누구랍니까? 거짓 맹세하지 않는 자라는 거지요 뭡니까? 언어의 성결을 이루는 자라는 겁니다. 단지 언어의 성결만이 아닌 신앙적 언어의 성결이라는 거지요 신앙적 언어의 성결을 이루지 않는 모습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고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걸 의식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오르고 설 자가 못 된다는 거라는 겁니다.

5~6절을 볼까요.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 설자의 자격에 대해 먼저는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깨끗한 자라고 했고 그 다음 마음과 영혼이 깨끗한 자며 마지막으로 언어에 깨끗한 자라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5절로 그 이하 절에서 이렇게 준비된 자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과 옳다고 여겨주신다는 거지요 여기 ‘복’ ‘베라카’는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라는 거거든요 그리고 ‘의’ ‘우체다카’는 사람의 의가 아니지요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의라는 겁니다. 이 복이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최고의 복이라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나를 향해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처럼 귀한 복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의를 어떻게 얻을 수 있었습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서지요 우리가 예전엔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롬10:3절에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랬던 우리가 롬10:10절이지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또 롬5: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아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과 여호와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이 된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건 하나님의 도우심과 불쌍히 여김을 받는 걸 말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6절 끝에 ‘셀라’ 뭡니까? 음의 변화를 주라는 표라는 거지요
7절을 보세요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 랍니다. 성막의 문은 성소로 들어가는 문과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기 위한 문 모두 두 개의 문이 있거든요 이 문을 휘장이라고 부르지요 출26:36절에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놓아 짜서 성막 문을 위하여 휘장을 만들고” 그러니까 네 가지 색의 실로 짠 천을 위에서 아래로 드리워 문처럼 사용하는 거지요 그렇다면 제사장들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휘장으로 된 문을 들어 올려야 들어갈 수 있는 거잖아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의미하는 하나님의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그리고 다윗 성 안에 있는 성막의 성소의 문을 통과하고 지성소의 문을 통과하여 지성소 안 법궤가 있었던 자리에 놓게 되는 모습을 ‘영원한 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라고 한 거고 하나님의 법궤가 들어가는 걸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9절에서 다시 똑같이 반복하지요 왜요? 성소의 문을 통과하고 또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을 통과하기 때문이지요. 8절에 들어가시는 영광의 왕이 누구시랍니까? ‘예흐와 잇주즈 웨깁보르’ ‘강하고 능하신 여호와’ ‘예흐와 낍보르 밀르하마’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시라는 겁니다. 10절을 보세요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를 영광의 왕으로 노래하고 있지요 ‘만군의 여호와’ ‘예흐와 체바오트’ 천군천사를 호령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지요 다윗은 자신이 왕이면서도 왕 위에 왕 여호와를 말하면서 그분은 바로 다름이 아닌 영광의 왕인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왕 위에 왕이시며 영광의 왕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의 문을 올려서 능하고 강하신 여호와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께서 우리 삶의 영적전쟁으로부터 승리하게 하시는 복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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