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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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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6:1~11절 “오늘 우리도 이 시편을 ‘믹담’ 심비에 ‘새겨 넣으시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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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19-12-06 18:10    조회 8,582    댓글 0  
 
시16:1~11절 “오늘 우리도 이 시편을 ‘믹담’ 심비에 ‘새겨 넣으시자’고요” 2019.12.8.
표제를 보세요. 간단히 ‘다윗의 믹담’이랍니다. 이 ‘믹담’이라는 의미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지만 ‘믹담’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조각하다’ 또는 ‘새겨 넣다’거든요 그러니까 이 시편 16편 1절로 11절까지를 돌 판이나 나무에 일일이 한자 한자 새겨 넣은 시가 아니겠느냐 그래서 ‘믹담’이라 했다는 겁니다.

1절을 볼까요.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여기 ‘하나님이여’ ‘엘’이지요 ‘나를 지켜 주소서’ 히브리어 ‘솨메레니’ 뭡니까? ‘하나님께서 날 지켜주세요’라고 다윗이 하나님을 찾고 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지금 다윗이 처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거거든요 다윗이 이렇게 어려울 때 인생의 위기 때 하나님을 부르며 의뢰하고 있구나 그의 노래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거지요 ‘날 지켜 주세요’ ‘솨메리니’의 원형 ‘솨마르’의 의미는 ‘양떼를 지켜내는 울타리’거든요 그는 인생의 위기를 맞이하여 자신의 양무리를 칠 때 가시나무 ‘울타리’로 보호해줬던 것이 생각이 나면서 하나님이 ‘솨마르’ ‘내 울타리’가 되어달라는 아주 간절하고 애절하게 ‘솨메르니’ 날 지켜주세요 하나님을 찾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사울 임금에게 쫓겨 다니는 다윗을 보면서 주변의 사람들이 ‘네 하나님이 널 버리신 것 같아, 차라리 다른 신을 찾는 것이 어떠냐?’ 비웃는 그런 환경이거든요 우리의 삶에서도 그렇지요 자꾸만 겹쳐지는 불행스러운 어려움 때문에 ‘너 뭔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 살아서 그런 거 아니야’ 이런 주변의 말이 들릴 때가 있잖아요. 매우 신경이 쓰이는 시간들이지요. 이럴 때 다윗은 어떻습니까? 사람의 소리에 실망하기 보다는 ‘솨메레니’ ‘날 지켜주세요’에 이어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 개역개정성경에는 ‘키’라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가 생략이 되었습니다만 원문에서는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 ‘키’가 있다는 거지요 ‘날 지켜주세요 왜냐하면 내가 주께 피하니까’ 그런 말인 겁니다. 뭡니까? 주께 피하는데 주님이 왜 안 지켜 주시겠느냐는 믿음의 고백이라는 거지요 믿음의 고백인 이유가  여기 ‘피하다’ 히브리어 ‘하씨티’의 원형 ‘하싸’의 의미가 피난처로의 ‘도피’라는 의미도 되지만 ‘신뢰하다’라는 의미라는 거지요
2절을 보시지요.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여기 ‘주’는 주권자라는 의미니까 다윗은 자신의 생사를 책임지실 분은 주권자 하나님이시라는 거지요 지금 다윗은 생명의 위기를 당한 상황에서 살고 죽는 것이 내 생명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엇이 복이라는 겁니까? 주님 한 분 이시라는 거지요 일반적으로 복을 말할 때 단어가 히브리어 ‘빠라크’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복은 히브리어 ‘토바티’라는 거지요 그 의미는 좋은 것 선한 것이거든요 다윗은 살면서 참 많은 좋은 것들이 있었잖아요. 하나님이 다윗을 목동에서 왕으로 또 가는 곳마다 이기게 하셨지요. 영적인 큰 은혜로 인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좋은 것들도 있었지요. 그러나 다윗이 정말로 좋은 것은 자기에게 하나님이 주신 많은 것들이 아니라 즐겁고 기쁜 때나 슬프고 어려운 힘들 때 자신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거 아닙니까? 우리도 다윗과 같은 고백이 있기를 원합니다.

3절을 볼까요.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여기 ‘성도’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거룩하게 구별된 자’를 말하잖아요. 이 구별은 내게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찾아와 주셔서 만나주심으로 이루어진 것이지요. 우리도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내 안에 모심으로 성도인 존귀한 자가 되었잖아요. 그렇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존귀한 자라는 겁니다.
다윗의 즐거움이 이 땅을 바라보는 자들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바로 성도들에게 있다는 거지요 그러나 지금 다윗의 생명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은 주권자요 섭리하시는 하나님대신 이 땅의 것만 생각하고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다윗을 죽이려하고 있고 이들을 바라볼 때 다윗은 매우 서글프지만 자신과 같이 어려울 때 여호와께 피하고 주권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는 그 사람들을 보는 것이 바로 자신의 즐거움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다윗을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4절에서 말하지요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이 없는 자들이 하는 짓을 보면 다른 신을 찾더라는 거지요 그런데 다른 신을 찾아서 좋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뭡니까? 괴로움이 더하더라는 겁니다. 또 다른 신에게 드리는 제사는 피의 전제라는 거지요 그런데 이 피의 전제가 인간의 피라는 거고 이래야 진노한 신의 노여움이 풀 수 있다는 거거든요 다윗은 이 이름에 대해서 자신의 입술로 부르지 않겠다는 거지요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입조차도 더러워지니까
5절을 보시지요.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여호와가 누구시냐는 거지요 ‘나의 산업’이시라잖아요. 여기 ‘산업’ 히브리어 ‘헬레크’는 ‘몫을 나누다’라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나의 산업’이란 ‘내 몫으로 받았다’라는 거지요 그리고 ‘잔의 소득’에서 ‘잔’ 히브리어 ‘코스’의 의미가 ‘주어진 삶’이거든요 예수님에게 주어진 잔이 있음을 예수님도 말씀하셨잖아요. 십자가 지시기 전 겟세마네동산에서 피 땀 흘려 기도하실 때 이 잔이 내게서 옮겨지기를 기도하셨고 내가 받을 잔이라면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셨잖아요. 그래서 이 잔의 소득이 뭔가요? 빌2:9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예수님이 십자가라는 하나님이 주신 잔을 마셨을 때 손해가 아니었다는 거지요 오히려 소득이 되게 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우리가 마셔야 할 잔이 있잖아요. 이 잔은 쓰고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우리가 마시면 소득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잔을 맞는 자세는 빌2:14절이지요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하십니다. 감사함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잔이 있으면 거절하지도 피하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왜? 화가 될 줄 알았는데 선을 이루사 득이 되게 하시니까 그리고 나의 분깃을 누가 지키세요? 원수들의 세력으로부터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거 아닙니까?

6절을 볼까요.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지난 주 목우회 총회 때 목우회 회장으로 일 년 동안 사명을 잘 감당하고 물러나면서 설교를 하는데 바로 이 말씀을 언급하더라고요 뭐냐 하면 그 목사님이 지금의 일산교회이고 예전에 명칭은 주엽교회인데 이 교회를 떠나오면서 겪었던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때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서 건물을 보러 다니다가 결국은 동패리 산비탈 버려진 땅을 평당 30만원씩 구입했다는 겁니다. 그 당시 목회자들은 전원교회로 참 앞을 내다보신다고 하면서 여러 말들을 해줬는데 자신은 그때는 가장 싸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구입했다는 거지요 이 땅을 구입할 당시 너무 실망이 된 나머지 모든 걸 다 포기 하고 싶을 정도였던 때라는 거지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 바로 교회가 있는 그 앞으로 아주 큰 대단위 아파트 신도시가 건축이 되고 있는 겁니다. 목사님이 그 때는 그렇게 실망했었는데 그 당시 고통 가운데 있는 자신에게 하나님이 재어준 그 구역이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면서 ‘내게 재어준 구역이 실로 아름다운 곳에 있다’고 설교에 인용하더라고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모든 것은 선하지 않을 것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시편기자 다윗도 바로 그 이야기거든요 얼마나 많은 생명의 위협과 위기를 겪으며 살았나요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있는 자신과 자신의 잘된 가문을 그리고 자신의 왕국을 우뚝 견고히 세우신 걸 보면서 실로 하나님이 내게 재어준 구역이 실로 아름다운 곳에 있다 뭡니까? 하나님이 옳으셨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7절에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맞습니다. 주님이 옳으셨습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게 되더라는 거고 인생의 밤이 올 때마다 이 사실을 다시 떠 올려 교훈으로 삼는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다윗의 확고한 결심을 8절에서 이야기하지요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우리 또한 동일한 결심과 모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결심이 9절에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그리고 확고부동한 분명한 사실은 뭔가요? 10절에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예수 믿는 우리도 그렇습니까? 하나님 날 버리지 않으신다 난 천국백성이다 죽어도 하나님 나라에  간다 아멘이십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세상의 삶에서 마지막 11절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이신 예수님만 따라 가면서 하나님 앞에 살므로 충만한 기쁨으로 내 가슴에 채워지고 주의 오른 쪽 뭡니까? 권능이지요 이 권능을 맛보며 영원한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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