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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4:13~17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날 회복시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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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19-08-16 18:16    조회 5,875    댓글 0  
 
룻4:13~17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날 회복시키시다” 2019.8.418.
베들레헴성읍의 백성들과 십 인의 장로들이 보아스에게 네가 유력하고 유명해지기를 원한다고 축사했고 룻에겐 레아와 라헬이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것처럼 룻으로 하여금 집을 세우라는 축사를 했고 보아스와 룻의 앞으로 생길 2세에겐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 같게 되라고 덕담을 뛰어넘은 엄청난 예언이 담긴 축사를 했다는 것이 지난 주 설교였거든요 오늘은 그 다음 사건이 어떻게 전개가 되는 지 아쉽지만 룻기의 마지막 설교를 통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3절을 볼까요.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여기서 뭐가 생략이 되었나요? 예식이지요. 유대인의 전통결혼예식은 예식이 끝이 나면 초청 받았던 모든 손님들이 피로연장으로 자리이동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피로연장의 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는 거고 사람들은 그래도 길게 줄을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는 거지요 그런데 오래 서서 기다리는데 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피로연장의 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는 그 이유가 뭘까? 뭐냐 하면 그 시간에 신랑신부가 합법적으로 부부관계를 맺기 위해 비밀의 방에 가 있어서 그들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다’는 이 말은 피로연회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예식에 초청 받았던 손님들이 피로연회장의 그 문 앞에서 기다리는 수고를 하고 있었겠구나 상상할 수가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이 비밀의 방에 들어간 당사자들인 보아스와 룻은 룻3:11절 말씀이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룻의 프로포즈를 받고 보아스가 한 말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보아스가 한 이 약속이 지금 현실이 되었다는 거잖아요 룻은 볼을 꼬집어보면서 꿈이 아니구나 현실인 것을 실감 했을 겁니다.
자 그 다음 연회장의 축제가 생략이 되고 열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을 낳았다고 말씀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런데 여기 첨가된 말씀이 뭡니까? ‘여호와께서 임신하게 하셨다’는 거잖아요 만사가 그렇지요 인간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거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결실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또 깨닫는 것은 룻이 불과 열 달 전 그리고 그 전 칠칠이 사십구일 보리추수가 시작될 때 합해서 거의 일 년 전에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도착했잖아요. 그때 룻은 보호받을 아무런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거거든요 남편 잃고 아들도 없는 여인은 그녀가 유대인이라도 아무런 보호를 못 받는 상태인데 더욱이 모압 여인 룻은 더하면 더한 절망적 위치에 있었다는 거지요 그런 그녀를 보아스가 속량하여 아들을 얻게 한 겁니다. 아들이 있다는 건 뭡니까? 이제부터 룻에게 보호자가 생겼다는 거잖아요 이는 우리 이야기 아닐까요?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엔 영락없이 룻과 같은 절망 가운데 있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엡2:11~12절에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우리가 누구와 같았어요? 룻과 같았다는 겁니다. 보아스가 룻을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의 일원으로 만들어준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독생자 아들 예수그리스도로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이 되게 하셨잖아요 그래서 그 다음 13절에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러므로 성경은 아들이신 예수를 믿는 우리를 뭐라고 선언합니까? 엡2:19절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아들로 인해 우리는 룻처럼 보호자가 생긴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들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 아들로 인해 마귀가 쫓겨가고 병마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문제를 이기고 기도에 응답 받고 우리로  영원한 영생을 누리게 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4절을 볼까요.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여기 ‘찬송할지로다’ 원문에는 히브리어 ‘예흐와 빠루크’거든요 그렇다면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이 안 된 부분이 뭡니까? 당연히 ‘여호와’지요 원문에서 강조가 되고 있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찬양할지로다’로 번역하고 있지만 ‘찬양받으실 여호와’라는 거지요 ‘예흐와 빠루크’는 ‘축복 받으실 여호와’라는 번역도 가능하거든요 이렇게 찬송을 하는 이들이 누굽니까? 베들레헴의 여인들이지요. 이들이 누구에게 ‘찬송 받으실 여호와’ ‘예흐와 빠루크’라고 하였습니까? 뜻밖에 시어머니 나오미였다는 거지요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이 뭐냐 하면? 룻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언급이 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대신 나오미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여기서 우리는 아주 먼 훗날 예수그리스도에게서 그 의미를 찾게 된다는 거지요 아들로 오신 예수께서 구속을 완성하신 후에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잖아요. 그리고 그 이유도 말씀하셨지요. 요16:7절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아들로 오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완성하시고 가셔야 누가 오십니까? 보혜사 성령님이시잖아요 그리고 그 성령님이 오시면 그 다음 8절이지요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그 다음 이어진 13절에서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이천 년 전 모습으로 계속 살아 계신다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 겁니까? 우리에겐 죄 사함도 하나님의 자녀가 됨도 내 안에 성령이 계심도 구원도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일도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나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리워 가셨지요 그리고 대신 성령님을 보내 주심으로 믿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기업 무를 자가 되게 하셨다는 거 아닙니까?
이처럼 만약에 룻이 전면에서 사라지지지 않는다면 아이는 여전히 룻의 품에 있을 거잖아요 그리고 룻은 아들을 품에서 내려놓지를 않았을 거라는 거지요 우리 주님이 계속 이 세상에 계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듯이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는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육의 눈만 있지 영의 눈으로 하늘나라와 하나님을 보는 일은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거라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서 룻의 퇴장은 너무도 필요했다는 거지요

15절을 볼까요.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여기 ‘회복자’ 히브리어 ‘레메쉬브’는 ‘시간이 돌아오다’거든요. 사실 나오미가 어땠었습니까? 룻1:21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뭡니까? 10년의 세월이 자신을 텅 비게 만들었지만 며느리가 낳은 아들이 자신을 텅 비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오게 하는 회복 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뭡니까? 나오미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는 의미라는 거지요
우리도 그렇지요 고후8: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너무도 가난했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부요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요한 자들이 되었잖아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텅 빈 우리로 생명으로 풍성하게 회복케 하시려고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음을 말씀하셨지요. 요10:10절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리고 베들레헴의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일곱 아들 보다 귀한 룻이 낳은 아들이라고 하잖아요. 왜요? 죽었다고 생각했던 나오미의 태에서 그렇다고 아들들도 죽고 없는 그런 절망적 환경에서 함께 동행 했던 모압 여인 룻을 통해 자신의 죽은 데서 아들을 얻었으니 귀합니다. 그래서 16절이지요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아기를 품고 여기 ‘아기’는 히브리어 ‘하옐레드’ ‘그 아기 또는 그 아이’거든요 왜 ‘아들’을 뜻하는 히브리어 ‘뺀’이란 단어를 나두고 ‘하옐레드’ ‘그 아이’라는 단어를 썼을까요? 룻1:5절에 ‘두 아들’ 히브리어 ‘옐레데하’ ‘옐레드’의 복수형 ‘옐레데’ ‘하’ 정관사가 있지요 ‘그 두 아이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본문에서 ‘아들’ 히브리어 ‘뺀’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잊을 수가 없는 죽은 ‘두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그 아이’라고 말했다는 거지요 여기서 깨닫는 것이 뭡니까? 두 아이들을 데리고 가심으로 징계하셨던 하나님이 노년의 봉양자로 그 아이를 품게 하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해 주시는 은총의 하나님이시라는 거지요 시30:5절에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예수의 사람들인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17절에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여기서 이상한 점은 보통 아이의 이름은 유대인들은 아버지가 지어주는 것인데 베들레헴의 여인들이 지어주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오벳의 의미는 ‘섬기는 자’거든요. 혼자인 나오미를 섬기며 봉양자가 되라는 의미일 겁니다.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였고 그로부터 천 년이 지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섬기는 자로 자기 목숨을 주는 데까지 섬기는 자로 예수님이 오셨다는 거 아닙니까?
룻기를 마치면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렇게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는 회복자가 되셨고 하나님의 자녀와 나라로 삼으셨고 텅 빈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셨고 우리로 하나님의 진노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은총을 받을 자로 바꾸어 주신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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